'호의'로 흑해요충지 내줬다는 러…"실상은 '뼈아픈 패배'"

입력 2022-07-01 10:46   수정 2022-07-01 14:19

'호의'로 흑해요충지 내줬다는 러…"실상은 '뼈아픈 패배'"
"모스크바함 잃은 러, 방어력 약화에 뱀섬서 어쩔 수 없이 철수"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러시아군이 흑해 최대 요충지로 꼽히던 '즈미니섬'(뱀섬)을 우크라이나군에 내준 것이 매우 뼈아픈 패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군은 뱀섬 병력 철수 이유로 짐짓 곡물 수출을 배려해 '호의를 베푼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는 러시아 국내용 해명에 불과하다고 BBC방송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지적했다.
BBC는 러시아군 입장에서 뱀섬을 방어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진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뱀섬은 우크라이나 해안선에서 35㎞ 떨어져 있다. 미사일, 곡사포, 드론 대다수가 사정거리에 넣을 수 있는 거리다. 육지, 해양, 공중 어느 방향에서라도 공격이 가해질 수 있다.
러시아는 침공 첫날인 2월 24일 흑해 함대 기함 '모스크바함'을 앞세워 뱀섬을 점령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활용해 이후 넉 달 넘게 섬 탈환을 시도했고, 섬 자체는 물론이고, 러시아군 장병·장비를 수송하는 함정도 꾸준히 타격했다.
4월부터는 모스크바함 격침으로 러시아군의 대공 방어망에 큰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러시아군은 모스크바함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뱀섬에 대공 방어체계와 전자전 장비 배치를 꾸준히 시도했지만, 뱀섬이 워낙 러시아 해군 본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피해 수송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최근에는 뱀섬에서 가까운 우크라이나 남부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에 프랑스제 차량화자주포가 배치돼 우크라이나의 공격력은 더욱 증강됐다.
즉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뱀섬을 양보한 것이 아니라 장악을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봉쇄를 시도하던 러시아가 지정학적 중요성이 매우 큰 뱀섬을 그냥 내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통제하고 있고 흑해 연안 항구도시 상당수도 점령한 상태다. 아조우해는 러시아군이 통째로 장악했다.
여기에 뱀섬만 추가로 확보하면 오데사항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해양 무역을 거의 완전히 봉쇄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사실상 러시아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뱀섬을 확보하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루마니아에도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독일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중부 유럽과 동유럽 9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나오는 '동유럽의 젖줄' 다뉴브강 하구도 사정권 안에 넣을 수 있었던 만큼 러시아군이 단순히 호의로 뱀섬을 내줬다는 것은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스티브 로젠버그 BBC 러시아 에디터는 "이미 넉 달 이상 뱀섬을 차지하겠다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고, 러시아군이 그동안 '호의'라곤 보여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임무를 마쳤으니 호의를 보여주겠다'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해명이 러시아 자국민을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호의를 내세우는 '착한 편'이며, 자국의 '특수 군사작전'이 계획대로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취지로 정치 선전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뱀섬을 확보한 우크라이나가 곡물 수출 재개를 고려해볼 수 있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텔레그래프는 우크라이나가 즉각 뱀섬에 대공·대함 방어체계를 설치하고, 흑해의 러시아 기뢰 제거 작업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앤드루 윌슨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안전하게 수출하려면 한 10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뱀섬 확보는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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