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피해 4천700명 넘어도 '책임' 인정 않아
"러 변명 덕에 자국내 전쟁지지 여론 공고히 유지"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2월24일 러시아 침공 이후 민간인 사망자 수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현재 4천731명에 이른다. 사망자 수가 1만 명이 넘는다는 우크라이나 당국의 집계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대로 책임을 인정한 적은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 러시아가 그동안 민간인 희생에 대해 꾸준히 책임을 부인·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이 빵집, 극장, 기차역 등의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내놓은 '해명'을 모아 보도했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이달 1일 남부 도시 오데사 인근 호텔에 대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이 꼽힌다. 이 공격으로 최소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러시아군은 이 호텔이 "군사 장비를 생산·수리하는 탄약·무기 보관·생산기지"라고 주장했다. 외국인 용병과 보수파 집단이 이곳에서 훈련받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군 통수권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특수 군사작전'을 진행하면서 민간인 시설물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고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며 반론을 원천 봉쇄했다.
최소 20명이 사망한 지난달 27일 쇼핑몰 타격에 대해서는 "쇼핑몰 옆에 미국·유럽에서 지원한 무기의 보관장소가 있었다"면서 "이 시설의 무기가 폭발하면서 쇼핑몰에 화재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피난민으로 발 디딜 틈이 없던 4월8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에 대해서는 러시아군이 아닌 우크라이나군의 자작극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현장에서 토치카-U 미사일의 잔해가 발견됐는데, 러시아군은 이런 장비를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3월16일 체르니히우 슈퍼마켓 앞에서 빵을 사려던 민간인 18명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숨졌다는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고발이 나왔을 때는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의 보수단체나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공격을 조작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같은 날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극장이 폭격으로 무너졌을 때 러시아군은 자국군의 공격설을 부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무슨 동영상을 얼마나 조작하든, 결국엔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며 자작극 피해자 행세를 했다. 당시 극장 대피 중이던 민간인 중 최소 수십명(국제앰네스티), 최대 600명(AP통신)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보다 앞서 같은 도시의 산부인과를 미사일로 공격한 뒤에는 "산부인과가 우크라이나군 기지로 활용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공격에 부상당한 임신부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이번 전쟁의 흉포함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 됐다. 사진 속 임신부는 이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부차 학살'에 대해서도 러시아군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키이우 공략을 노리던 러시아군이 3월 말 철수한 이후, 인근 도시 부차에서는 마치 처형당한 듯한 시신 수십 구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NYT 취재팀이 이런 형태 시신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이런 민간인 시신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의 '조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NYT는 이 같은 러시아의 해명 덕분에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내 여론이 매우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 상당수가 국영 텔레비전 방송에서 자국군의 해명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NYT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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