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급등 천연가스, 세계 질서 좌우하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

입력 2022-07-05 17:07  

가격 급등 천연가스, 세계 질서 좌우하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
유럽 투자 노력에도 공급부족 우려…경기후퇴 요인으로 작용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천연가스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야기하는 주요 동력이 되면서 원유만큼이나 세계 지정학을 결정하는 핵심 원자재로 부상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5일 진단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혼란으로 세계 원자재 전반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가운데 천연가스 가격은 그 어떤 원자재보다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천연가스는 그동안 대륙별로 시장이 분절돼 거래가 이뤄졌다. 수송하려면 가스관을 까는 대공사를 하거나, 또는 운반선에 싣기 전에 우선 액화시켜야 하므로 원유보다 대륙 간 이동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줄이자 상황은 급변했다.
유럽 국가들이 당장의 부족분을 벌충하려고 미국 등 다른 지역에서 거래되던 천연가스를 사들이자 다른 국가들도 가스 사재기에 나서 천연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세계화 흐름이 퇴조하는 상황에서 유독 천연가스 거래만 빠르게 세계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천연가스 쟁탈전이 전 세계 차원에서 격화됐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아시아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1년 전보다 3배나 뛰어올랐고, 유럽에서는 작년 초 이래 700%가량 급등했다.
특히 지난달 미국의 주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기업인 프리포트의 텍사스 시설이 폭발 사고로 가동이 일시 중단된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천연가스 가격은 60% 넘게 치솟았다.
단,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은 같은 기간 40%가량 하락했다. 수출시설 가동 중단은 곧 내수 공급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도 올해 들어 프리포트 가동 중단 이전까지 이미 2배 이상으로 오른 상태였다.
천연가스 수요를 충족하려면 공급 확대를 위해 투자해야 하며, 이는 현재 이미 진행 중이기도 하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지난주 회담에서 가스 프로젝트에 대해 공공 투자를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런 투자는 수출시설, 수입 터미널, 파이프라인, LNG 운반선 등을 포함한다.
일부 경우 이런 노력은 기후변화 대응에서 정책적 유턴을 의미한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유럽투자은행(EI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 유럽 국책은행은 그동안 재생에너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했으나, 이제 가스 프로젝트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이 이같이 LNG 공급 확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충분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유럽의 LNG 수입량이 2026년까지 역내 천연가스 필요량의 40%만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또한 천연가스발 경기후퇴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에너지 회사인 유니퍼의 구제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유니퍼는 러시아 측 가스공급 중단으로 다른 곳에서 더 비싼 천연가스를 사들여야 하기에 하루 약 3천만유로(약 407억원)씩 손실이 나고 있다.
독일 바스프와 같은 화학기업들은 천연가스 공급 부족으로 생산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도이체방크는 독일의 임박한 경기후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전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지역이 올해 말까지 경기후퇴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신흥국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파키스탄은 연료 부족으로 계획 정전을 단행하면서 주요 도시에서 쇼핑몰 영업시간과 공장 가동 시간을 단축했다.
태국은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LNG의 수입을 제한해 연료 부족 사태에 직면했고, 미얀마는 지난해 후반 아예 모든 LNG 수입을 중단했다.


pseudoj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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