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주변 참호 파고 지뢰 매설…"탈취 시설을 방패로"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유럽에서 단일 원자력발전 시설로는 최대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단지가 러시아군의 포병 기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원전 훼손을 우려한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러시아군에는 원전이 '최고의 방패'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작업자와 주민, 우크라이나 당국 등에 따르면 침공 초기인 3월4일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한 러시아군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단지에 대형 무기를 들여오고 있다.
원자로 굴뚝 바로 옆에는 옛 소련 때 제작된 다연장로켓포 스메르치 차량 등이 배치됐고 단지 주변에는 참호가 목격됐다. 단지 곳곳에서 수송차량이 오가고 있고, 군견용 임시 사육장까지 설치됐다고 WSJ는 전했다.
원자로 냉각수의 취수원인 인근 저수지 변에는 대인지뢰가 다량 매설됐고 지하 벙커에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에너지사 로사톰의 고위 기술자들도 엄중한 경호 속에서 원전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자포리자 원전을 온전한 상태에서 되찾을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가동 중인 원전 근처에서 포격전을 벌이면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안드리 자고로드뉴크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WSJ에 "핵심 기반시설을 장악하고 그 시설을 방패로 삼는 것이 러시아의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며 "발전소를 습격할 수는 없다. 되찾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설을 완전히 포위하고 좀 나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원전과 직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자국에서 기술 전문가를 파견받았다지만 러시아군은 자포리자 원전을 매우 무모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현재 일단 원전을 관리하는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회사 에네르고아톰은 이날 러시아군이 냉각수 취수원인 저수지의 물을 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폭로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물속에 숨긴 무기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동 중인 원자로는 원자로와 사용 후 핵연료봉 등을 냉각하려면 깨끗한 냉각수를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조치라고 WSJ는 지적했다.
자포리자 원전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이에 연결된 감시용 채널이 최근 3일간 끊어지기도 했다. 원자로 근처에 매설된 지뢰가 폭발이라도 하면 대규모 원자력 누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또 원전 직원들은 러시아 점령군에게 온갖 갈취와 살해 위협 등을 당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초기에는 우크라이나군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구실로 직원들을 구타하고 돈을 빼앗더니 최근에는 아예 직원을 납치한 뒤 500 흐리우냐(약 200만원) 수준의 돈을 내놔야만 풀어주겠다는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직원들은 주장했다.
최근 자포리자 원전을 탈출했다는 전 직원은 WSJ에 "그런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다"며 "다음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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