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에 빠진 사법부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스콧 대 샌퍼드' 판결
"흑인은 시민 아니다"…노예제 제한하는 의회 입법까지 무효화
막강한 힘의 원천 사법심사권 스스로 확립…헌법적 근거는 불분명
[※편집자 주 : '뉴스 뒤 역사'는 주요 국제뉴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건, 장소, 인물, 예술작품 등을 찾아 소개하는 부정기 연재물입니다.]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우리는 그들이 국민이 아니며, 국민에 속하지 않으며, 헌법상 시민에도 포함되지 않으며, 따라서 헌법이 미합중국의 시민에게 제공하고 보장하는 권리와 특권을 아무것도 주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속적이고 열등한 부류로 생각됐고, 우월한 종족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해방 여부와 관계없이 우월한 종족의 권한에 귀속되며, 권력을 가진 자나 정부가 부여하지 않는 권리나 특권은 가지지 못한다."
1857년 미국 연방대법원(이하 대법원)의 '드레드 스콧 대 샌퍼드'(Dred Scott v. Sandford) 사건 판결문 가운데 일부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여기서 '그들'은 흑인이다. 이미 영국, 프랑스 등 문명국가임을 자부하던 선진국이 노예무역과 노예제를 금지한 지 오래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같은 미국 안에서도 북부의 여러 주가 노예제를 부인하고 흑인에게도 최소한 법적으로는 시민으로서 권리를 부여하던 때였다. 인류의 양심과 이성을 거역하는 것은 물론 당대의 현실과도 맞지 않았던 이 판결은 당연히 미국 사법부가 내린 역사상 최악의 결정으로 손꼽힌다.
이 사건은 노예로 태어나 주인인 미군 군의관을 따라 미국의 여러 주를 옮겨 다녔던 드레드 스콧이 1846년 미주리주 법원에 자신의 자유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스콧은 자신이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는 일리노이주와 위스콘신준주 등 자유주(Free State)로 이주하는 순간 자동으로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으며 노예주(Slave State)로 되돌아가더라도 다시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주와 연방의 여러 법원을 오가는 길고 복잡한 소송 끝에 마침내 연방대법원까지 가게 된 이 사건의 결론은 스콧의 패소였다. 제5대 대법원장 로저 토니가 집필한 판결문은 흑인은 노예든 아니든 미국의 시민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소송을 제기할 권리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에 더해 노예는 재산일 뿐이며 사유재산의 보호를 규정한 수정헌법 5조에 따라 노예를 소유한 주인의 재산권은 침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여기까지만 해도 법리적 결함과 논리적 모순이 적지 않지만 이쯤에서 멈췄더라면 국지적인 파문을 야기하는 데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 노예제를 제한하는 의회의 법률은 헌법 위반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미 건국 전부터 서로 적대시한 노예제 찬반론자들은 미국의 영토 확장에 따라 새로 편입되는 주가 자유주가 될 것인지, 아니면 노예주가 될 것인지를 두고 극심한 대립을 빚었다. 결국 1820년 연방의회는 메인을 자유주로, 미주리를 노예주로 각각 연방에 편입하되 앞으로 신설되는 주 가운데 북위 36도30분을 기준으로 북쪽은 자유주, 남쪽은 노예주로 하자는 '미주리 타협'(Missouri Compromise)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법원의 스콧 사건 판결은 바로 미주리 타협의 무효화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불안하게나마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의 폭발적 분출을 막았던 안전판이 사라져 버렸다.
대법원의 위헌 판결은 최종적이고 더는 재고를 요청할 만한 상위 기관이 없기 때문에 스콧 사건 판결 이후 노예제 문제를 사법적으로 논의할 기회는 모두 소진됐다. 노예제 찬성론자들은 이 판결을 계기로 의회가 노예제를 규제할 수 없도록 못 박고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하려 했지만 이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노예제 찬반론자들의 상호 불신과 혐오는 임계점을 넘어 내달렸고 마침내 남북전쟁이라는 파국을 맞고 만다.
대법원이 헌법 위반을 이유로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무효로 한 근거는 '사법심사'(Judicial Review) 권한이었다. 대법원은 헌법의 해석자, 헌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1803년 헌법의 대법원 관할권 조항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어 당시 시행되던 법원조직법에 대해 처음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고 스콧 사건 판결은 두 번째다. 대법원의 사법심사 권한은 대법관 9명 중 5명의 동의만으로 법률이나 행정 조치를 없던 일로 만들 만큼 막강하지만 놀랍게도 미국 헌법 어디에서도 대법원과 대법관들에게 이러한 권한을 부여하는 명시적 조항을 찾을 수 없다. 미국 헌법은 대법원의 권한에 관해 "합중국의 사법권은 1개의 연방대법원에, 그리고 연방의회가 수시로 제정 설치하는 하급법원들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헌법 제정자들은 대법원의 조직과 구체적인 역할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지언정 사법부의 독립만큼은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리하여 미국 헌법 제3조 제1항의 후반부에 "연방대법원 및 하급법원의 판사는 행실이 올바른 한(during good behavior) 그 직을 보유한다"는 구절이 들어갔다. 이는 사실상 연방법관의 종신 임기를 보장한 조항이다. 상·하원의 의원도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을 보장받지만 이들은 주기적으로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은 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기껏해야 8년 동안 재직할 수 있을 뿐이다.
'견제와 균형'을 요체로 하는 삼권분립의 이념에 따라 강력한 독립성을 부여받은 대법원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막강한 권한으로 견제하지만 막상 스스로 행하는 업무에 관해서는 어느 정부기관으로부터도 견제받지 않는다. "사법권이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사법부에 있으니 의회가 만든 법률이라도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하면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은 헌법에 분명한 근거도 없고 논리적으로도 필연성을 찾기 어렵지만 의회도, 대통령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헌법적인 원리로 굳어지고 말았다. 스콧 판결은 남북전쟁 후 노예제를 폐지하는 헌법 개정이 이뤄지고서야 취소될 수 있었다.
스콧 판결이 내려진 지 165년이 지나 여성의 낙태권을 대폭 후퇴시킨 대법원 판결을 두고 또다시 선출되지 않은 미국 대법관들의 종신 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 최초의 위헌법률 파기를 지켜보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토머스 제퍼슨은 1820년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오늘 미국 신문 인터넷 사이트의 의견란에 실린다고 하더라도 공감하는 댓글이 많이 달릴 만한 글이다.
"당신은 판사들을 모든 헌법적 문제의 궁극적 심판자로 보는 것 같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견해이고 우리를 과두 독재 아래로 전락하게 할 수도 있는 생각입니다. 판사들의 정직성은 보통 사람들보다 높지 않고 정당이나 권력, 자기들 무리의 특권에 대한 열정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좋은 판사의 의무는 관할권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격언을 떠받듭니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 재직하면서 다른 공직자들과는 달리 선거결과에 의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권력은 더욱 위험합니다"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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