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갈색 지방세포, 이노신 분비→다른 세포 발열 자극
생쥐 모델에 이노신 쓰면 비만 억제 효과
독일 본 대학 연구진, 저널 '네이처'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지방 하면 보통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백색 지방을 생각한다.
하지만 갈색 지방은 백색 지방을 태워 열을 방출한다. 당연히 갈색 지방은 비만 등의 억제에 도움이 된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진화 과정에서 갈색 지방세포의 발열 메커니즘을 발달시켰다. 추운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체온 유지가 필요했다.
그런데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점차 이 메커니즘이 필요 없게 됐다. 환경 변화는 갈색 지방세포에 심한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노화 등이 가세해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갈색 지방세포는 발열 기능을 멈추고 스스로 소멸하는 '세포 예정사'(apoptosis)의 길로 들어선다.
신생아 때 체중의 5%이던 갈색 지방이 성장 과정에서 0.1%까지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비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갈색 지방세포에 관심이 많다. 갈색 지방을 자극해 지방 연소(발열)를 늘리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마침내 독일 과학자들이 유력한 해법을 찾아냈다.
죽어가는 갈색 지방세포가 뉴클레오타이드의 일종인 '이노신'(inosine)을 다량 분비해 주위 지방세포의 발열을 자극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이다.
푸린(purine) 대사에 관여하는 이노신이 이렇게 풀리면 백색 지방세포가 갈색 지방세포로 변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노신을 생쥐 모델에 투여하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고 살이 찌는 게 억제됐다.
독일 본 대학 약물ㆍ독성학 연구소의 알렉산더 파이퍼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5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실렸다.
원래 세포는 죽어갈 때 주변 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 분자를 방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갈색 지방세포에도 똑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갈색 지방세포가 분비하는 이노신은 다른 갈색 지방세포에 보내는 '구조 신호'와 흡사했다.
주위의 멀쩡한 갈색 지방세포가, 죽어가는 '동료'의 이노신 신호를 받으면 내부 '보일러'를 돌리기 시작했다.
또 백색 지방세포가 이노신 신호를 받으면 갈색 지방세포로 변했다.
고칼로리 먹이를 준 생쥐에게 이노신을 투여하면 대조군보다 살이 덜 쪘고 당뇨병도 생기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tRNA(운반 RNA)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노신은 염기쌍으로부터 유전 암호가 제대로 번역되는 데 필수적이다.
이노신 일인산(inosine monophosphate)은 산화 과정을 거쳐 퓨린 대사의 주요 전구물질인 잔토신 일인산을 생성한다.
그러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건 이노신 운반체(inosine transporter)로 추정됐다.
이 운반체는 세포막에 존재하면서 이노신을 세포 내로 옮기는 단백질이다.
이 운반체가 활성화해 세포 밖의 이노신 농도가 낮아지면 갈색 지방세포의 지방 연소를 촉진하는 효과도 사라졌다.
다행히 바로 쓸 만한 약이 이미 나와 있다.
원래 혈액 응고 이상을 치료하는 용도로 개발된 이 약은 이노신 운반체를 억제하기도 했다.
예상대로 이 약을 생쥐에게 투여했더니 더 많은 지방을 태우는 효과를 보였다.
인간도 이노신 운반체를 갖고 있다.
그런데 유전자 돌연변이로 이 운반체의 활성도가 떨어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2∼4%에 불과하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라이프치히대 연구진이 지원자 900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이노신 운반체의 활성도가 낮은 사람은 평균보다 마른 편이었다.
이노신이 인간의 갈색 지방세포에서도 열 발생을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노신 운반체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찾아내면 유력한 비만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승인된 응혈 질환 치료제가 용도 재지정 등의 과정을 거쳐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팀은 아직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파이퍼 교수는 "이 메커니즘의 약물학적 잠재력을 충분히 확인하려면 인간에 적용하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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