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 수출금지·원전연장 등 추진…세제개편 불만에 개인사업자 등 수백명 거리로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고비가 있을 때마다 민심을 다잡으려고 국가 비상사태를 들고나온 헝가리 정부가 이번엔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연료 수급난 대처에 나섰다.
그러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단행된 세제 개편이 민심을 자극하면서 정부 시책을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 정부는 13일(현지시간)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내각 회의 후 기자회견을 열고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구야시 총리 비서실장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로 인해 유럽은 에너지 위기에 처했다"면서 자국 내 에너지 공급을 늘릴 방안을 제시했다.
헝가리는 원유의 65%, 가스의 80%를 러시아에서 조달한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서방이 대응책으로 내놓은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 등이 오히려 석유 가격 상승을 초래하면서 헝가리도 연료 수급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에 헝가리 정부는 연료 수출 금지, 자국 천연가스 생산량 증대, 원전 가동 시간 연장 등의 조치를 내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특히 평균치 이상의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은 정부 보조금이 반영된 가격이 아닌 비싼 시장가로 연료비를 지불하도록 할 계획이다.
헝가리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비상사태하에서는 총리가 사실상 입법 주도권을 쥐고 관련 시책을 추진하게 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헝가리 정부가 방역을 위해 발표한 비상사태는 올해까지 재연장됐고, 오르반 총리가 연임에 성공한 직후인 올해 5월에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에 긴급히 대처해야 한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오르반 총리가 추진하는 시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하되, 세금을 더 걷어 그 공백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개인 사업자나 영세 업체 운영자들이 세금을 회피하는 일을 막기 위해 소상공인세제(KATA)의 적용 대상을 늘리고 과세율을 높이자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그간 KATA가 느슨하게 운용돼 예산 누수를 부추긴다고 보고 있지만 면세 혜택을 보다가 갑자기 세금을 물게 된 개인 사업자 등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현지 교민 등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까지 이틀 연속으로 자영업자 등 시민 수백명이 부다페스트에 있는 의회 청사 앞에 몰려 새로 도입한 세제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부다페스트 중심부로 행진하면서 소상공인들과 협의 없이 세제를 바꾼 것은 집권당의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헝가리에서 회계 컨설턴트로 일하는 교민 김도형 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KATA에 대한 불만 때문에 많은 영세업자가 거리로 나온 것"이라며 "에너지 보조금에 많은 돈을 쓰는 정부로선 세수 증대나 탈세 차단을 위해 세제를 개편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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