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르포] 점거 푼 시위대…"우리도 평범한 직장인일 뿐"

입력 2022-07-14 22:18  

[스리랑카 르포] 점거 푼 시위대…"우리도 평범한 직장인일 뿐"
"정치인에게 화났을 뿐 외국인에겐 친절…다시 관광객 왔으면"
"우리는 속았고 지금도 속고 있다…다시 대규모 집회 벌어질 수도"



(콜롬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14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 앞은 지난 며칠과 달리 한산했다.
대통령 집무실은 지난 9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 때 시위대가 점거한 곳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많은 시민이 이 곳에 운집해 정권 퇴진을 외쳤다.
하지만 이날은 점심때가 다 됐는데도 시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지난 12일 시위 현장에서 만났던 교사 히다야씨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오늘은 친구들과 시위에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출근해서 일하는 중"이라며 "우리도 직장인인데, 오늘은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위대도 오늘부터 당분간 시위를 중단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총리 집무실은 무장한 경찰이 지키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콜롬보 외곽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에 있는 국회 앞에도 시위대는 없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이곳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부터 대규모 텐트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원 갈라 페이스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우리는 사실 매우 친절한 사람들인데 너무 화가 나고 직장도 잃어 이곳에 나온 것"이라며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또 "우리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화난 것뿐"이라며 "우리는 외국인에게 매우 친절하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다시 많은 관광객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가부도 사태로 석유제품 등 필수 수입품이 사실상 끊긴 스리랑카에서는 지난 9일 생활고에 지친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고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등을 점거했다.
이에 놀란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공군 기지로 대피한 뒤 군용기를 타고 몰디브로 달아났다.
그는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아직 사임계는 내지 않고 있다. 자신이 안전해질 때까지 대통령 면책특권을 누리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해외로 대피하면서 자신이 임명한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명했다.
사임 의사를 밝혔던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지난 14일 평화롭게 권력이 이양되도록 자신이 권한 대행을 맡겠다고 밝혔고, 이에 시위대는 폭발했다.
시위대는 다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총리 집무실을 점거했고 이 과정에서 막아선 경찰과 충돌해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시위대의 지도부인 데빈다 코다고데는 AP와의 인터뷰에서 국회가 정권 교체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 등 점거했던 시설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스리랑카 시민들은 일상 회복을 기원하며 시위를 중단했지만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대규모 시위가 재발할 것을 우려해 이날 정오부터 15일 오전 5시까지 콜롬보 일대에 통행 금지령을 발동한 상태다.
군과 경찰은 성명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경고했다.
위크레메싱게 총리가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국회 앞은 스리랑카군과 경찰이 장갑차까지 동원해 입장을 통제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디사나야케씨는 "스리랑카인들은 정치에 대해 너무 멍청하다. 우리는 속았고 지금도 속고 있다"며 "뚜렷한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주말에는 다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laecor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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