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알아서 90% 이상 금융지원 연장' 정부 지침에 '대 혼돈'

입력 2022-07-17 06:16   수정 2022-07-17 07:23

은행권 '알아서 90% 이상 금융지원 연장' 정부 지침에 '대 혼돈'
5대 은행 미뤄준 원금·이자 170조 넘어…"부실 명백한 이자유예까지 연장 곤란"
은행 임원·실무자 "90∼95% 재연장·주거래금융기관 책임 관리제 등 처음 들어"
금융지주들 상반기 역대 최대 이익 예상…"고통 분담 요구 갈수록 커질 것"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민선희 김유아 기자 = 정부가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코로나19 금융지원을 9월 말로 종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은행권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민생안정 금융지원대책의 하나로 발표된 '은행 자율적으로 차주의 90∼95%에 만기·상환유예를 추가 연장해 주라'는 정부의 지침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부실이 확실한 이자 유예 대출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해석만 분분한 가운데 갈팡질팡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발표에 앞서 금융권과 논의했다고 주장하지만, 은행의 상당수 여신 관련 임원과 실무책임자들은 '90∼95%', '주거래금융기관 책임관리' 등 대책의 주요 내용을 처음 듣는다고 밝혔다.

◇ 유예된 이자의 원금까지 포함하면 잠재부실 172조원
은행권은 2020년 초부터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방침에 따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도 유예했다.
지원은 당초 2020년 9월로 시한을 정해 시작됐지만, 코로나19 여파가 길어지자 지원 종료 시점이 6개월씩 네 차례나 연장됐다.
17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금융 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원이 시작된 이후 이달 14일까지 여러 형태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의 총액은 168조5천323억원에 이른다.
만기가 연장된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모두 157조3천489억원(69만5천344건)으로 집계됐다.
대출 원금을 나눠 갚고 있던 기업의 '분할 납부액' 10조8천812억원(2만8천75건)도 받지 않고 미뤄줬고(원금상환 유예), 같은 기간 이자 3천22억원(5천924건)도 유예됐다.
더구나 이자 유예액은 3천22억원 뿐이지만, 한은이 집계한 올해 5월 기업의 평균 대출 금리(연 3.60%)를 적용하면 이 이자 뒤에는 약 3조3천578억원(3천22억원/0.036/2.5년)의 대출 원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현재 5대 은행은 코로나19와 관련해 171조8천901억원(168조5천323억+3조3천578억원)에 이르는 잠재 부실 대출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표] 5대 은행 코로나19 금융 지원 실적
(단위:억원)
┌──────────┬─────────┬────────────┬───┐
│ 만기연장 │ 분할납입 유예 │이자유예│ 총액 │
│  │ (원금) │    │ │
├────┬─────┼───┬─────┼───┬────┬───┼───┤
│ 건 │금액(억원)│ 건 │금액(억원)│ 건 │금액(억 │관련원│ │
││ │ │ │ │ 원) │금(추 │ │
││ │ │ │ ││ 정) │ │
├────┼─────┼───┼─────┼───┼────┼───┼───┤
│ 695,344│ 1,573,489│28,075│ 108,812│ 5,924│ 3,022│33,578│1,685,│
││ │ │ │ ││ │ 323│
││ │ │ │ ││ │ (이자│
││ │ │ │ ││ │ 유예│
││ │ │ │ ││ │ 원금│
││ │ │ │ ││ │ 제외)│
││ │ │ │ ││ │1,718,│
││ │ │ │ ││ │ 901│
││ │ │ │ ││ │이자유│
││ │ │ │ ││ │ 예 원│
││ │ │ │ ││ │ 금 포│
││ │ │ │ ││ │ 함)│
└────┴─────┴───┴─────┴───┴────┴───┴───┘
※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자료 취합합

◇ "이자유예까지 90% 이상 재연장하면 위험 부담 너무 커"
정부가 지난 14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표한 금융 대책에 따르면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 등 금융지원은 9월 말로 끝나고, 이후에는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 관리'가 시작된다.
소상공인이 신청하면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상 차주의 90∼95%에 다시 추가 만기 연장이나 상환 유예 등을 해주라는 것인데, 정작 '자율 조치'의 주체인 은행 관계자 대다수는 이런 지침의 구체적 의미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해당 분야 임원은 "정부의 발표를 통해 이런 방침을 처음 접했다. 더 높은 고위 관계자와 협의를 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원급에서 사전 조율을 한 적은 없다"며 "포괄적으로 90∼95%를 재연장해주라는 것 같은데, 정확한 의미를 아직 모르겠다.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임원도 "주거래은행 책임관리제도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었다"며 "90∼95%라는 게 차주 기준인지, 금융지원 대상 금액 기준인지도 모르겠고, 이자 유예를 포함한 종합적 재연장 비율인지, 만기연장과 이자유예를 나눠서 각 90% 이상이라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개인적 짐작으로 만기연장은 원하면 다 해주되, 5∼10%의 이자 유예 차주 등에 대해서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은행권이 '90% 이상'이라는 당국의 비율 언급에 민감한 것은 이자를 못 내는 기업들의 부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자는 내겠지만 코로나19로 원금을 갚기가 벅차니 좀 미뤄달라'는 경우는 원금 만기 연장으로 숨통을 틔워주면 은행 입장에서도 향후 대출 상환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이자도 못 내겠다"는 기업은 긴급 조치가 필요한데 이자 유예로 '연명치료'만 해도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게 은행의 입장이다.
시중은행 여신 실무자는 "만기 재연장도 90% 이상, 이자납입유예 재연장도 90% 이상, 원금상환유예 재연장도 90% 이상 해주라는 개념이 아니라, 만기연장·이자유예·원금상환유예 등을 합쳐서 90% 이상 재연장해주라는 뜻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실무자는 "이자 납입유예의 경우 자체적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현금흐름과 상환능력을 고려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대상인만큼, 이들을 90% 이상 지원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금융회사의 부담이 너무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차주들 입장에서도 금리 상승기에 이자 상환을 계속 유예하는 것은 부담일 것"이라며 "은행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권은 "사전 논의가 부족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금융위원회는 도덕적 해이, 은행으로의 책임 전가 등 논란이 일자 14일 보도 설명자료를 내고 "주거래금융기관 책임관리 방안에 대해 금융권과 긴밀히 논의해왔다"고 주장했다.



◇ "대책은 정부가, 재원은 상당 부분 은행이 떠안을 가능성"
아울러 은행권에서는 취약차주가 연착륙하도록 돕는 것은 당연하고 실제로 여러 프로그램을 이미 가동했지만, 정부가 금리 상승과 함께 커지는 금융 위험의 책임을 은행에 돌리고 지원을 독촉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약층에 대한 정부의 금융지원 대책에서 빠진 부분에 대해서는 금융사가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금융권이 정부 차원의 대책 이외에 자율적으로 취약차주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지금까지 네 차례나 금융지원을 연장할 때마다 정부가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코로나 위기를 강조하면서 협조를 요청해놓고, 이제 와서 부채가 본질적으로 금융사와 채무자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은행권은 정부와 정치권의 금융지원 압력이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번주(7·18∼22)부터 금융지주들이 잇따라 2분기 실적 발표에 나서는 가운데,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2분기 약 4조4천억원을 포함해 상반기 전체로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2분기 실적까지 공개되면, 지금까지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새출발기금 출연이나 저신용 청년층 채무 감면 등 금융권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정치권 등에서 커질 수 있다"며 "대책은 정부가 발표했지만, 재원의 상당 부분은 금융권이 떠안을 개연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른 관계자는 "금리 상승기에 서민은 고통받는데 은행은 이자 장사로 배가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당국은 이자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책과 관련해 책임 전가 문제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나친 채무 감면이나 일률적 금융지원 재연장 등의 대책은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넘어 신용평가를 바탕으로 한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hk999@yna.co.kr ssun@yna.co.kr ku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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