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폭염경보 역대 최고단계 발령…포르투갈에선 한낮 47도까지
"기후변화가 폭염의 잔혹성 키워" 전문가 한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불볕더위가 유럽을 집어삼키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국가 비상상황에 준하는 폭염경보를 내리며 야외활동 자제를 권고하고 있으며, 스페인 등지에선 산불까지 겹쳐 피해가 속출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적잖게 발생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폭염의 '잔혹성'이 더 자주,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영국·프랑스 폭염 적색경보 발령…산불까지 '이중고'
영국은 17일(현지시간) 자정을 기해 런던을 비롯한 잉글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폭염 적색경보를 사상 처음 발령했다.
여름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 에어컨을 쓸모없는 가전으로 치부하기도 하는 영국에서는 이례적으로 18∼19일 낮 기온이 41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보됐다.
영국 보건안전청(UKHSA)에 따르면 적색경보는 국가 비상 상황에 준하는 수준으로, 폭염이 너무 심하거나 오래돼 그 여파가 보건·복지체계 너머로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건강한 사람들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발효된다.
프랑스 기상청도 서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폭염 적색경보를 내렸다. 나머지 국토에는 대부분 1∼2단계 아래인 주황색·황색 경보를 발령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수준의 폭염경보가 내려진 스페인 일부 지역은 한낮 기온이 43∼44도를 오르내리고 있는데, 여름에도 서늘하기로 유명한 북서부 갈리시아 미뇨 계곡은 최고 42도까지 찍었다고 영국 BBC는 보도했다.
스페인 폭염 관련 사망자를 매일 집계하는 카를로스 3세 국립대 보건연구소는 10∼15일에만 폭염 관련 사망자가 360명에 달한 것으로 파악했다.
포르투갈에서도 지난주 기온이 최고 47도까지 올라가면서 폭염으로 인해 659명이 사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과 프랑스는 산불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
프랑스 유명 와인 산지인 보르도 인근을 덮친 화마는 임야 110㎢를 태웠고 주민 1만4천명도 피난길에 올랐다.
스페인 남부 휴양지 말라가 인근 미하스 일부 지역도 잿더미로 변했고, 포르투갈 북부 지역도 산불로 300㎢가 피해를 봤다. 소방관들이 투입돼 큰 불길은 잡았으나 폭염 때문에 다시 불씨가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포르투갈 국립기상연구소는 본토 80%에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최근 3단계 대비 태세 중 2단계에 해당하는 '비상'을 발령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유럽에 산불사태가 났다"라며 산불 소식을 일제히 톱기사로 다룬 유럽 국가의 주요 신문 1면을 모아서 보도하기도 했다.
◇ "웬만하면 집에 머무세요"… 각국 정부 대응 부심
각국 정부는 폭염 피해가 더 커질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동을 자제하면서 실내에 머물라고 권고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영국 런던교통공사는 주민들에게 필수 일정이 아니면 18∼19일 가급적 지하철 등 철도 이용을 피해달라고 촉구했다.
폭염으로 철로가 늘어나 철도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철도의 운행 속도를 줄이고, 일부 선로를 흰색으로 칠하는 페인트 작업을 벌여 햇빛의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영국 보건당국은 햇볕이 강하고 더운 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외출을 자제하고 가급적 물을 많이 마실 것을 당부했다.
프랑스 알프스 지역 당국의 경우 산악인들에게 몽블랑 등정을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이상 기후 조건과 가뭄으로 인한 낙석 위험이 있어서다.
앞서 이탈리아 돌로미티 알프스 빙하 붕괴 참사로 11명의 관광객이 숨진 바 있다.
포르투갈 일부 관광 명소는 한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한다. 수도 리스본의 왕실 가족이 더위를 피해 머무르는 곳으로 유명한 신트라 왕궁은 일시 휴관할 예정이라고 BBC는 전했다.
스페인 정부도 노약자를 비롯한 주민들에게 가급적 실내에 머물라고 안내했다.
영국 브리스톨대 유니스 로 박사는 "이와 같은 극심한 폭염에는 건강한 사람도 위험할 수 있다"며 "반려동물과 농장 동물 역시 폭염에 취약한 상태인 만큼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폭염 부추겨"
과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화석연료 남용이나 대규모 공장형 목축 과정에서 급증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촉진했고, 이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가 폭염의 '잔혹성'을 더 키웠다는 진단이다.
실제 환경 전문가들이 10년간의 기상 관측 자료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해 인과 관계를 살핀 결과 기후변화가 폭염을 부르는 '열풍'(heatwave) 발생 가능성을 꾸준히 높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지난달 국제저널 '환경연구: 기후'에 관련 논문을 실은 연구진은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더 강렬하게,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기후변화가 나타나지 않던 때보다 최근 열풍이 3배가량 더 많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웰링턴 빅토리아대의 루크 해링턴 박사는 "열풍의 빈도뿐만 아니라 강도는 더 세지고 있는데, 그 원인도 기후변화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다국적 단체인 WWA(World Weather Attribution) 프리데리케 오토 박사 역시 기후변화가 폭염의 '게임체인저'라며 "유럽과 미국 등 북반구 전역에 걸쳐 나타난 6월의 불볕더위는 폭염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유럽에 휘몰아치고 있는 열풍은 제트기류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일부분이 떨어져 나와 포르투갈 서부에 강한 저기압을 만들었고, 이 저기압이 남쪽의 더운 공기를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에 뿌린 결과라고 BBC는 전했다.
walde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