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 자료에 '투자자 손실'을 언급한 게 논란 확대 불씨
서울회생법원, 변제금 산정 때 채무자 투자손실금 제외 업무규정도 논란
"채무조정, 경제에 필요한 제도…도덕적 해이 논란 과도"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정부가 폐업 등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자영업자 채무를 최대 90% 탕감해주고 청년 채무자의 이자를 감면해주기로 한 것과 관련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부추긴다는 논란이 금융당국의 잇따른 해명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의 채무조정 지원책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은 지난 14일 대책 발표 당일부터 제기됐다.
특히 금융위가 청년특례 프로그램의 도입배경에 '주식·가상자산 투자자 손실'을 언급한 게 논란 확대의 불씨가 됐다.
저신용 청년들을 위해 마련된 '청년 특례 프로그램'은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청년(34세 이하)을 대상으로 채무 정도에 따라 이자를 30∼50% 감면하고,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유예를 하면서 해당 기간 이자율을 3.25%로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금융위는 대책 발표 브리핑 자료에서 "투자 손실 등 애로가 큰 저신용 청년들이 신속하게 재기할 수 있도록 신속채무조정 특례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정부가 세금을 들여 '빚투(빚내서 투자)'로 손해를 본 청년층의 대출을 탕감해주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회자하면서 20∼30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확산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8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가상자산 투자실패자 지원대책이 아니다"라고 직접 진화에 나서야 했다.
그는 "현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하다 보니 발표 자료에 '투자 손실' 얘기가 들어갔다"며 "해당 표현이 도덕적해이 논란을 촉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정부대책은 금융회사와, 신용회복위원회, 회생법원 등이 수행하는 기존 채무조정 지원 제도의 정신과 기본 취지에 맞춰 설계된 것이라고 김 위원장은 강조했다.
이번 대책을 둘러싸고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일종의 오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빚투 실패 지원과 관련해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이달 초에도 서울회생법원이 채무자가 갚을 돈을 산정하는 데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을 제외하기로 업무 기준을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논란이 인 바 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취약층 채무조정 제도의 경제적 장점이 뚜렷한 것에 반해 도덕적 해이 논란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한다.
서영수 키움증권[039490] 이사는 "새출발기금은 민간이 소화하기 어려운 소상공인 부실채권을 정부가 기금을 만들어 액면가 대비 크게 할인된 가격(신용대출의 경우 8∼10%)에 인수하는 것"이라며 "대출 부실에 대한 비용부담은 일차적으로 (싼 가격에 대출채권을 매각한) 금융회사들이 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채무조정 대상 개인 입장에서는 카드 사용과 대출이 제한되고, 금융사에 이력이 남으면서 사실상 10년 이상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려워지는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며 "청년층의 경우 취업제한이 될 수도 있어 채무 경감을 받는다고 끝나는 게 아닌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무조정을 통해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파악하지 않으면 금융회사가 정상 대출마저 꺼리면서 신용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며 "채무조정 제도는 경제 전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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