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2등급으로 떨어져…평판 하락 외 별도의 제재는 없어
"전년보다 노력 지속적이지 않아"…처벌 강화·피해자 보호 권고
1→2등급 강등은 한국뿐…北, 신설된 국가후원인신매매 11개국에 포함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의 등급이 2등급으로 한 단계 강등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무부는 19일(현지시간) 188개국으로 대상으로 평가해 공개한 '2022년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의 등급을 최고 등급인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한 단계 내렸다.
한국은 2001년 첫 보고서 발간 당시 3등급을 받은 뒤 2002년부터는 매년 1등급을 유지했지만, 20년 만에 하향 조정된 것이다.
2등급의 경우 미국이 가하는 별도 제재나 불이익은 없지만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미국의 평가가 나온 것이어서 국제적으로 국가 평판에 일정 정도 손상이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번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1년이던 2021년 4월 1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기간을 평가 대상으로 했다.
◇"한국, 전년 비해 지속적 노력하지 않아"…외국인 성매매·강제노동 방점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최소한 기준을 완전히 충족하지 않았지만, 이를 위해 의미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반(反) 인신매매 능력에 영향을 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고려하더라도 전년의 노력에 비해 진지하거나 지속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인신매매의 피해 범주에 속하는 항목 중 성매매, 강제노동, 그중에서도 외국인 피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비중을 둬 살펴봤다.
구체적으로 전년 평가 기간보다 검찰의 기소 건수가 줄었고, 성매매를 강제당한 외국인 피해자를 오히려 처벌해온 우려사항에 대응하는 조처를 하지 않았으며, 때때로 피해자들을 추방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인 노동자 중 한국 어선에서 강제 노동이 만연하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피해자 신원 확인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당국자들은 피해자 식별 지침을 일관되게 활용하지 않았고, 법원도 인신매매 관련 범죄자 다수에 대해 1년 미만의 징역형이나 벌금,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국무부는 밝혔다.
인신매매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졌다는 지적으로, 국무부는 많은 범죄자가 종종 처벌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벌 수위도 약해 처벌 후에도 인신매매 행위를 재개하는 경우도 있다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
그러면서 ▲ 성매매 종사자, 어부, 이주 노동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한 능동적 감시 ▲ 어선 강제노동 등 인신매매범의 기소 및 처벌 강화 ▲ 당국자 교육 강화 ▲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정식 절차 마련 및 이행 ▲ 다른 범죄와 구분한 인신매매 관련 법의 집행 및 피해자 보호 자료 시스템 구축 ▲ 기관 간 협력 증대 등을 제안했다.
◇인신매매 보고서 평가는 어떻게…2등급은 불이익 없어
국무부는 2000년 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 제정 이후 2001년부터 매년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법에 규정된 인신매매는 물리력이나 강압, 사기로 비자발적 노역이나 용역을 위해 사람을 모집, 이송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우 주로 강제 성매매, 강제노동 등 약탈적 행위에 초점이 맞춰졌다.
다만 국무부 보고서는 인신매매의 현황과 실태보다는 피해자를 줄이고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실행 등 정부의 노력을 기초로 평가한다.
낮은 등급은 인신매매가 성행한다는 말이 아니라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담았다는 뜻이다.
평가는 각국의 미국 대사관, 정부 당국자, 비정부 기구에서 나온 정보, 각종 보고서와 뉴스, 학술 연구, 정부 및 단체들과 협의를 통해 이뤄진다.
등급은 1등급부터 3등급까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2등급 중에서도 일반 2등급 외에 '감시 리스트' 국가 명단을 별도로 작성한다. 정부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는 '특별 사례'로 분류한다.
올해 발표 대상 국가는 모두 188개국이다.
이 중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대만 등 30개국은 가장 높은 1등급이다.
또 한국이 포함된 2등급에는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국부터 브라질, 이스라엘, 그리스, 인도, 멕시코, 태국, 우크라이나 등 모두 99개국이 포함됐다.
2등급 중에서도 피해가 늘지만 비례적 조처를 하지 않은 나라에 해당하는 '감시 리스트' 국가에는 34개국이 이름을 올렸다.
최하등급인 3등급에는 북한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이란, 쿠바, 시리아, 튀르키예(터키) 등 22개국이 포함됐다.
특별 사례는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3개국이다.
국무부 당국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올해 평가 시 21개국의 등급이 상향 조정되고 18개국은 하향됐다고 밝혔다.
이 중 3개국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갔고, 1개국은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2등급으로 내려간 국가를 호명하지 않았지만 한국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1∼2등급의 경우 미국이 취하는 별도 불이익은 없다.
반면 3등급으로 지정되면 인도적 지원, 교역 관련 지원을 제외한 미국의 다른 해외 원조 대상에서 일정한 제약을 받고, 교환 프로그램이나 다국적 개발은행에서 미국의 지원 거부에 직면할 수 있다.
20년 연속 최악인 3등급으로 지정된 북한과 달리 한국은 2등급으로 한 계단 내려갔지만, 인신매매 근절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판 효과 외에 별도의 제도적 불이익은 없다는 말이다.
한편 북한은 국가가 인신매매나 강제노동, 성노예 등에 관여하는 국가 후원 인신매매 11개국에 러시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과 함께 포함됐다. 이 분류는 올해 신설됐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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