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갈수록 심해지는 자국 규제 때문에 한국 시장 진출에 필사적인 중국 게임사들도 이해가 가지만, 불공정한 판호 문제를 생각하면 억울하게 느껴질 수밖에요."(판교의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
20일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騰迅·텅쉰)가 한국게임산업협회 이사사로 가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 게임사들은 술렁이는 분위기다.
2017년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계기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판호(版號·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 문제 때문이다.
중국은 심의를 거친 자국 게임사 게임에 '내자판호'를, 해외 게임사 게임에는 '외자판호'를 발급해 서비스를 허가하고 있다.
한국은 2014년∼2016년 중국에 48개의 게임을 수출했다. 그러나 '한한령'이 본격화된 2017년 3월 이후 외자판호를 발급받아 직접 게임을 서비스한 한국 게임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한한령으로부터 약 4년 만인 2020년 12월 컴투스의 '서머너즈워: 천공의 아레나'가 한한령 이후 한국 게임사로서는 처음으로 판호를 받았고, 2021년에는 핸드메이드게임즈의 '룸즈'와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 등이 판호를 받았다.
그러나 '서머너즈워'와 '검은사막 모바일'은 각각 2014년과 2018년 처음 출시된 구작들이고, '룸즈'는 소규모 제작팀이 만든 인디 게임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자국 최신 게임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외국 게임 일부만 '보여주기식'으로 판호를 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달 들어서는 카카오게임즈 계열사 님블뉴런의 게임 IP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 '이터널 리턴: 인피니트'가 내자판호를 발급받았으나, 개발과 서비스를 중국 게임사가 맡았고 님블뉴런 측은 계약에 따른 로열티를 챙기는 구조다.
이렇게 중국 정부가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몸집을 키워온 중국 게임사들은 최근 한국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연일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 문제를 지적하며 게임산업에 고강도 규제를 가하고 있어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이달 기준 한국 앱마켓에서 호요버스의 '원신', 37모바일게임즈의 '히어로즈 테일즈', 릴리스게임즈의 '라이즈 오브 킹덤즈', 4933게임즈의 '헌터W' 등은 출시 이래 매출 순위 10위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텐센트는 국내 게임업체들에 대한 투자에도 열심이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텐센트는 별도 투자 자회사를 통해 크래프톤[259960]의 2대 주주(지분율 13.53%), 넷마블[251270]의 3대 주주(지분율 17.52%) 지위를 갖고 있다. 이밖에 한국 중소규모 게임사나 스타트업에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입지가 넓은 대기업들도 판호를 못 받는데, 중국 게임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 게임사들에게 중국 시장 진출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현 상황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텐센트의 한국 시장 영향력이 큰 만큼, 기존 회원사들도 텐센트를 이사사로 받아들이면 나름대로의 이점이 있다고 보고 받아들인 것 아닌가 싶다"고 평했다.
반면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업계와 정부 간 논의 내용, 특히 판호 대응 현황이 텐센트를 통해 중국 정부에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협회가 이익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판호 문제에 그간 소극적이었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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