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사회 양극화 부추기는 사조 추적·분석
성경 왜곡해 배제·차별·폭력…"예수의 정반대"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최근 확산하는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CNN방송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역사학자, 성직자, 학계 전문가들은 이 사상을 '백인 기독교인이 지배하는 미국 건립을 최우선 삼는 사조'로 정의한다.
전문가들은 이 사상의 추종자들이 미국 사회를 '진정한 미국인'과 '그 외'로 양분하고, 진정한 미국인만이 미국을 독차지하고 모든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분석한다.
CNN은 이 사상이 폭력적이고 이단적이며, 예수의 삶과 그의 가르침에도 정반대된다고 지적했다. 새뮤얼 페리 오칼라호마 대학 신학과 교수는 이런 사상을 "사이비 기독교"라고 단언했다.
이들이 미국 사회 전면에 등장한 것은 작년 1월6일 대선 불복 시위대의 미 의회 습격사건 때였다.
시위대가 경찰을 몽둥이로 폭행하고 이곳저곳에서 최루탄이 터지던 와중에도 일부 시위대는 사람 키보다 큰 십자가를 지고 나타나 엄숙하게 고개를 숙인 장면이 보도됐다.
아수라장 속에서 성경책을 방패처럼 품은 사람, '예수 구원'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사람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적힌 모자를 쓴 예수 그림이나 '하나님·총·트럼프'라고 새겨진 티셔츠도 나타났다. 한 성조기에는 "예수 나의 구원자, 트럼프 나의 대통령"이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었다.
이들은 이런 행동에 대해 나름의 종교적·역사적 이유를 내세우지만 모두 진실을 왜곡한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 건국됐다면서 미국을 종교 국가로 재건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필립 고르스키 예일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건국 주체인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한 명도 없었다.
미국 헌법도 신·십계명·성경 등을 언급하지 않는다. 1797년에는 "미국은 그 어떤 면에서도 '기독교 국가'로 건립되지 않았다"고 밝히는 공식 외교문서도 작성됐다는 점에서 이들의 해석은 근거가 부족하다.
폭력적 행동에도 '종교적 해석'을 갖다 붙인다.
이들은 예수를 '평화의 왕'으로 해석하기보다 요한계시록의 '그 눈이 불꽃 같은', '피 묻은 옷을 입은', '백마 탄 하늘 군대를 이끄는' 장수로 해석한다. 이 해석이 1월6일 의회 습격의 근거가 됐다는 것이다.
두메스 교수는 "이들은 검을 휘둘러 적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전사 예수'를 원한다. 예수와 함께 싸워 적들을 모두 해치우고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사상이 미국 종교계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크리스틴 두메스 캘빈신학교 교수는 "이 사상이 주류 교계에 침투해버렸다. 그 어떤 목사가 이런 이데올로기에 반대되는 말을 하려면 사실상 목사직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보수화하면서 이런 사상의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인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24일 낙태권 보장 판례를 폐기하면서, 미국에서는 동성애와 동성혼, 피임 등 다른 기본권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고르스키 교수는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국민을 규정한다. 미국은 다인종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백인만을 위한 기독교 민족주의 국가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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