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한은행서 확인된 이상 외환거래 규모만 잠정 4조1천억원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무역법인→해외법인 송금 수법
전 은행권 해당될듯…파악된 점검 대상 거래 규모만 53억 달러
(서울=연합뉴스) 오주현 기자 =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발생한 4조1천억원(33억7천만 달러)의 이상 외환거래는 대부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이 귀금속·여행 업체 등 무역법인의 계좌로 보내진 뒤 해외로 송금된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감독원은 27일 거액의 이상 외환거래와 관련한 은행권 검사 진행 상황을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연루된 무역법인은 중복을 제외하면 22곳이었는데, 각 법인의 대표가 같거나 사촌 관계인 것으로 밝혀지는 등 특수관계인으로 얽힌 경우가 많았다.
이를 두고 이들 업체의 송금이 국내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거래일 수 있다는 추정이 제기되고 있다.
◇ '이상 외환 거래' 출발점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파악된 대부분의 이상 외환거래는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출발했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국내 무역법인의 대표이사 등 다수의 개인 및 법인을 거쳐 해당 무역법인 계좌로 보내진 뒤, 수입대금 지급 등의 명목으로 해외법인에 송금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연루된 무역법인 가운데는 귀금속 수입 업종으로 신고된 무역법인이 많았으며, 화장품업, 여행업 등 다양한 업종의 법인이 있었다.
이들 법인의 대표는 서로 사촌 관계이거나, 한 사람이 여러 법인의 임원을 겸임하는 등 특수관계로 얽힌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감원이 이들의 자금 흐름을 추적한 결과 동일한 계좌에서 연루된 다른 2곳의 법인으로 송금하거나, 특수관계인으로 추정되는 업체 간에 시차를 둔 송금이 발견되는 등 연관성이 나타났다.
연루 법인들은 신용장이 필요 없는 사전 송금 방식을 선택해 비교적 손쉽게 해외로 거액을 송금할 수 있었다.
신용장이란 수입업자의 요청에 따라 수입업자가 거래하는 은행에서 수출업자가 발행하는 환어음의 결제를 보증하는 문서인데,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무역 거래에서 신용장이 필요한 거래는 15∼20%에 불과해 대부분 신용장이 필요 없는 사전송금 방식으로 진행되는 추세다.
일부 거래는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흘러온 자금과 일반적인 상거래를 통해 들어온 자금이 무역법인에 섞여 들어온 뒤 은행을 거쳐 해외로 송금되기도 했다.
다만 이런 유형의 거래구조는 우리은행 연루 업체 2곳, 신한은행 연루 업체 1곳 등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했다.
금감원은 외화 송금 업무를 취급한 은행이 외국환거래법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른 자금세탁방지 업무 이행 의무 등을 다했는지 점검하고 있다.
은행 측이 창구에서 외환거래를 진행하면서, 신설 업체이고 매출이 불투명한 업체에서 거액의 외환거래가 이뤄지는 것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토대로 서류를 충분히 검증했는지 등을 살피겠다는 것이다.
만약 은행 직원이 고의로 외화 송금을 도와준 정황이 발견된다면 대규모 제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외환 송금 거래가 수천 건에 걸쳐 이뤄진 만큼 개별 사례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확인 절차가 필요한데다, 자금세탁 혐의 입증에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조사가 필요해 제재 여부를 판단하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 '김치 프리미엄' 차익거래 가능성…해외거래소 송금 여부 확인 안돼
금감원이 추적해보니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을 통해 송금된 이상 외환거래 자금은 해외법인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해외 가상자산거래소가 아닌 일반 업체로 파악됐다.
국가별로 보면, 홍콩으로 흘러간 자금이 25억 달러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일본이 4억 달러, 미국이 2억 달러, 중국이 1.6억 달러 등으로 뒤따랐다.
금감원에 해외 법인에 대한 추적 권한이 없는 만큼 해외 법인의 소유자 정보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 점을 노려 자금을 해외 법인으로 우선 보낸 뒤에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로 송금했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이상 거래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불법 외환거래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여러 곳이 이번 이상 거래에 연루됐으나, 금감원에는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감독 권한이 없어 이들 자금이 거래소로 흘러들어온 경위에 대한 파악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김치 프리미엄 차익거래 추정되고 자금세탁 건은 은행이 이행의무 지켰는지와 연관되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지난 1일 전 은행권을 대상으로 ▲ 신설·영세업체의 대규모 송금거래 ▲ 가상자산 관련 송금거래 ▲ 특정 영업점을 통한 집중적 송금거래에 대한 자체 점검을 하도록 지시한 뒤 이달 말 제출받을 예정이다.
이날 기준으로 점검 대상 거래로 분류된 거래 규모(2021년 1월∼올해 6월)는 44개 업체와 관련해 53억7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거래 전체가 비정상적인 외화 송금 거래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은행권 이상 외환거래 규모는 향후 확대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각 은행의 점검 결과를 보고받은 뒤 필요한 경우 추가 검사에 돌입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검사 확대 여부는 자체 점검 결과를 본 뒤에 평가할 것"이라며 "은행이 자체 점검만으로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어 필요한 경우 추가 검사를 나갈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명확히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viva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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