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첫 시위 참여 독려한 나예임, 국회의원 거쳐 현재 기간시설부 차관
"자유 찾겠다는 국민 의지 있어, 지금은 유럽 가치 위해 싸운다"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저의 SNS 글은 불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쓰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가 썼을 겁니다.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2013년 우크라이나를 휩쓴 친서방 정권교체 혁명 '유로마이단'을 촉발했던 남자는 29일(현지시간) 공개된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수도 키이우 마이단 광장 시위에 동참하라던 자신의 SNS 글이 결국 9년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에 동의했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기자였던 무스타파 나예임(41)은 2014∼2019년 국회의원을 지냈고 현재는 정부에서 기간시설부 차관을 맡고 있다.
그는 2013년 겨울 페이스북에 "따뜻하게 입고, 우산, 차, 커피, 좋은 기분, 그리고 친구들을 데려오라"면서 시위 동참을 촉구했다.
그는 당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해 줄 유럽연합(EU)과의 협력 협정을 전격 중단한 것에 분노했다.
첫 마이단 광장 시위에 모인 시민은 1천500명 정도였으나 이후 3개월간 대대적으로 반정부 투쟁이 벌어지면서 우크라이나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친러 세력의 몰락에 대응해 동부에 군대를 배치하고 2014년 남부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그로부터 8년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다시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탱크를 앞세워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전쟁을 일으켰다.
소련의 침공으로 오랫동안 전쟁을 치른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태어난 나예임은 1989년 우크라이나로 이주했고 기자가 됐다. 생방송에서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가차없이 다그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유로마이단이 시작될 때까지 우크라이나 시민사회에 대해 희망을 품지 않았고,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부정선거 반대 시위를 취재하면서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더는 러시아가 푸틴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은 러시아 내부에서 상황을 바꾸는 대신 '짐승' 푸틴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뒀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차이는 제 페이스북 글이 아니라, 러시아인은 정부에 대한 두려움에 감염됐고 우리 젊은이와 중산층은 감염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나예임은 유로마이단 운동의 목표대로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획득했지만 "EU의 결정은 선물은 아니었다"면서 희생이 너무 컸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군인들의 목숨과 수년간의 삶을 희생해 그것을 얻었다"면서 "우리는 어떤 나라보다 EU에 가입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일부 EU 국가보다 더 유럽의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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