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성 암세포, 주변이 끈끈할수록 더 빨리 퍼진다

입력 2022-08-01 18:21  

전이성 암세포, 주변이 끈끈할수록 더 빨리 퍼진다
암세포의 '고점도 액체' 통과 메커니즘 확인
치명적인 전이암, 낭포성 섬유증 등 치료에 도움 될 듯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 '네이처 피직스'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암의 전이는 원발 암(primary tumor) 종양에서 떨어져 나온 암세포가 혈액 등을 통해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 새로운 종양을 형성하는 걸 말한다.
원발 암에서 떨어져 나와 전이암의 씨앗이 되는 암세포를 '순환 종양 세포(circulating tumor cells)', 줄여서 CTCs라고 한다.
CTCs는 혈액 1㎖당 적게는 1개, 많게는 10개가량 존재한다. 암 환자의 혈액에서 CTCs를 분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의 유형에 따라 CTCs의 생성률과 반감기(혈액 내 생존 기간)는 크게 다르다.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의 스콧 마닐라스 생물공학과 석좌교수팀은 이에 관한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2021년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논문 참조)
생쥐의 몸 안에 생긴 췌장암, 소세포폐암, 비소세포폐암 등 3개 유형의 암 종양에 실험했더니 CTCs의 반감기는 짧은 게 40초, 긴 게 250초로 나왔다.
또 공격적으로 전이하는 소세포 폐암은 1시간당 10만여 개의 CTCs가 원발 암에서 이탈했지만, 비 소세포 폐암과 췌장암은 각각 약 60개에 불과했다.
진짜 암에 걸린 생쥐나 CTCs를 이식받은 생쥐나 전이암이 생기는 위치는 같았다.
예컨대 어떤 생쥐의 소세포 폐암이 간에 전이하면, 이 생쥐의 CTCs를 건강한 생쥐에 이식해도 간암이 발생했다.
이처럼 암세포가 전이할 때 CTCs의 생성률이나 반감기 못지않게 중요한 게 CTCs의 이동 속도다.
CTCs의 이동 속도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가 주변 환경의 점도(粘度)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주변에 있는 혈액 등이 끈끈할수록 암세포가 더 빨리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전이암을 차단하는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 과학자들이 주도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7월 25일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 연구엔 미국의 존스홉킨스대와 밴더빌트대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이번 연구는 세포 주변 환경의 점도가 암과 같은 위험한 병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걸 처음 입증했다.
주변 환경의 점도가 높을수록 세포는 더 강하게 기질(substrate)에 달라붙었고, 이런 접착에 힘입어 세포가 더 빠르게 이동했다.
스파이크 신발을 착용하고 얼음 위를 걸으면 바닥의 접착력이 약한 보통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더 빨리 걸을 수 있는 것과 비슷했다.
연구팀은 암세포와 섬유아세포를 놓고, 각각 세포막에 주름이 생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견인력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했다.
점도가 높은 환경에서 암세포는 세포막 가장자리에 주름이 잡혔다 펴졌다 하면서 이동했다.
세포막에 주름이 잡혀 주변 환경의 끈끈함을 감지하면 매개 물질의 저항을 이용해 끌어당기는 힘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주름이 펴지면 세포막이 앞으로 펼쳐지면서 다시 표면에 달라붙었다.
논문의 교신 저자인 토론토대 세포 시스템 생물학과의 세르게이 플로트니코브 조교수는 "현미경으로 세포 이동을 관찰하면 느리고 미세한 속도 변화만 있다"라면서 "그런데 암세포가 점액과 유사한 액체를 통과할 땐 두 배의 속도를 냈고 세포도 두 배 크기로 펼쳐졌다"라고 말했다.
이 발견은 왜 암 종양이 주변 환경을 더 끈끈하게 만드는지를 설명한다.
주변 환경의 점도가 높아야 원발 암을 이탈한 CTCs가 더 빨리 다른 기관으로 이동해 새로운 종양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발견은 섬유아세포의 확산 반응에도 연관돼 있다.
상처가 났을 때 점막을 통해 가장 먼저 몰려오는 게 섬유아세포다. 그런데 섬유아세포는 상처를 치유하면서 같은 부위에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플로트니코브 교수팀은 낭포성 섬유증이 생긴 폐의 손상을 줄이는 데 이번 연구 결과가 도움이 될 거로 본다.
폐점막의 점성을 조절하면 섬유아세포의 이동을 제어해 조직 손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꿀을 바르면 상처가 잘 낫는 이유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플로트니코브 교수는 "꿀만큼 점도가 높은 액체를 상체에 바르면 세포가 더 깊은 데까지 더 빨리 이동할 것"이라면서 "그러면 상처도 더 잘 나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보통 세포 이동은 근육의 수축을 돕는 미오신(myosin) 단백질에 의존한다.
하지만 미오신의 발현을 차단해도 암세포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암세포 내부에 액틴(actin) 단백질이 있다는 걸 밝혀냈다.
액틴도 근육 수축에 관여하지만, 끈끈한 액체엔 미오신보다 더 안정적으로 반응했고 암세포의 가장자리를 더 멀리 밀어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암세포와 같이 막에 주름이 생긴 세포가 점도 높은 환경에서 이동할 때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찾고 있다.
암과 낭포성 섬유증 등에 적용할 새로운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ch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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