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야외노동에 찜통 숙소 생활…"냉방시설 갖춘 공공 공간 필요"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아시아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도 냉방시설을 이용하지 못해 심신이 극한에 내몰리고 있다고 CNN 방송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소득이 낮을수록 냉방기구 사용이 쉽지 않지만, 건설 현장이나 농장 등지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하고 생활환경도 좋지 않아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하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등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는 바깥에서 장시간 노동한 뒤에도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여럿이 함께 생활하고 잠을 자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일할 때 헬멧이나 작업복, 두꺼운 고무장화 등을 착용해야 해 체감온도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CNN이 소개한 인도 출신 32세 남성 라지는 싱가포르 도심의 공사장에서 일하다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이날 최고기온은 35도에 육박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타국에서의 육체노동을 택한 그는 냉방이 되는 병원에서 한 시간가량 대기한 뒤 진료를 받았다. 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라지는 "에어컨 바람을 쐰 것은 싱가포르행 비행기가 마지막이었다"며 "기숙사에서는 천장에 있는 선풍기가 천천히 회전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 잠자리를 옮기다가 겨우 잠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평균적으로 최저기온 25도, 최고기온 31도인 날이 이어지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냉방시설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인권을 연구하는 앤디 홀은 CNN에 "이주노동자들은 기후위기 논의에서 배제되고 잊히기 쉽다"며 "이주노동자들은 휴식 시간에도 차별과 구조적 제약 때문에 냉방시설이 갖춰진 쇼핑몰 등에 잘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더운 시간대에는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빈부에 따른 냉방 격차를 해소하고,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싱가포르 연구자인 윈스턴 초는 이주노동자는 물론 노인,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냉방시설이 갖춰진 공공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라디카 코슬라 옥스퍼드대 교수는 "나무는 점점 줄어드는데, 콘크리트 건물은 늘어나고 있다"며 "폭염으로 인한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냉방기기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전기 사용량을 줄여야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탄소 배출량도 감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