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보복 조치 가동…"잘못에 대가 치러야"
미국 "주권침해한 적 없어…호전적 언사에 겁먹지 않을 것"
(홍콩 베이징=연합뉴스) 윤고은 조준형 특파원 =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일격'을 받은 중국이 한시적 '대만 봉쇄'로 평가되는 고강도 무력 시위와 사실상의 경제 제재 카드로 '반격'에 나섰다.
펠로시의 대만행을 중국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엄중한 침해로 간주한 중국은 4일 12시부터 7일 12시까지 대만을 둘러싸는 형태로 설정한 6개 구역에서 실사격 훈련을 포함한 중요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안전을 위해 이 기간 관련 선박과 항공기는 해당 해역과 공역에 진입하지 말라고 알렸다.
아울러 대만을 관할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스이 대변인은 2일 밤부터 대만 주변에서 일련의 연합 군사행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대만 북부·서남·동남부 해역과 공역에서 연합 해상·공중훈련, 대만 해협에서 장거리 화력 실탄 사격을 각각 실시하고, 대만 동부 해역에서 상용 화력을 조직해 시험 사격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2일 밤부터 6개 구역에서 군사훈련을 시작했고 4일 정오부턴 실사격 훈련을 벌인다는 뜻으로 보인다.
스 대변인은 "이번 행동은 최근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중대하게 심화한 상황에 맞서 엄중한 공포 조치를 취해 대만 독립 세력의 독립 도모 행위에 엄중한 경고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동부전구는 3일 대만 북부, 서남부, 동남부 해역 및 공중에서 해군, 공군, 로켓군, 전략지원 부대 등을 조직해 실전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관영 환구시보 인터넷망에 따르면 동부전구는 이번 훈련에서 연합 봉쇄·통제, 해상 돌격, 대(對)육지 타격, 제공권 확보 작전 등을 중점적으로 연습함으로써 합동 전투능력을 테스트했다고 소개했다.
대만 매체 타이완뉴스는 1996년 3차 대만 위기 때와 비교할 때 이번 중국의 훈련 구역들이 대만에 더 가까운 곳에 있다고 보도했다.
또 대만 연합보는 6곳 중 한 곳인 대만 남쪽 가오슝 앞바다의 실사격 훈련 구역이 1996년 위기 때와 비교해 크게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1995년 당시 리덩후이 대만 총통이 모교인 코넬대 강연차 미국을 방문하자 중국은 1996년 3월 미 항공모함이 인근에 집결하기 전까지 대만 주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훈련을 강행하며 위협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훈련은 대만의 영공과 해상을 봉쇄하는 것과 같다"고 규탄했다.
홍콩 명보는 3일 사설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봉쇄하는 것과 같은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는데 상황이 악화하면 '쿠바 미사일 위기'의 21세기 버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측면에서 중국 상무부는 3일부터 대만에 대한 천연 모래 수출을 관련 법률 규정에 근거해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천연 모래는 풍화작용 등 자연적 현상에 의해 형성된 모래로, 건축자재용, 철강재 제조 과정 등에서 쓰인다.
또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는 대만산 감귤류 과일, 냉장 갈치, 냉동 전갱이의 수입을 3일부터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해관총서는 대만산 감귤에서 유해 물질이, 냉장 갈치와 냉동 전갱이의 포장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각각 검출됐다고 설명했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의 일부 대만 상품 수입 중단이 징벌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과 대만 독립·분열 세력이 반드시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라며 징벌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또 중국 정부의 대만 담당 기관인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3일 대만의 '대만민주기금회'와 '국제협력발전기금회'를 '완고한 대만 독립 분자 관련 기구'로 규정하고 이들 기금회와 중국의 조직·기업·개인 간 협력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두 기금회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기업·개인은 법에 따라 처벌하고 그외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만판공실은 또 산더에너지, 링왕테크놀로지, 톈량의료, 톈옌위성테크놀로지 등 두 기금에 기부한 대만 기업들과의 교역·협력을 금지하고, 해당 대만 기업 책임자는 중국에 들어올 수 없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한 중국의 1차 '반격'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경제 제재에 집중된 것으로 평가된다.
화춘잉 대변인은 미국과 대만에 대한 반격 조치의 상세 내용을 질문받자 "관련 조치는 결연하고 힘 있고 실효적일 것이며 미국과 대만 독립 세력이 계속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밝힌 뒤 "우리는 한다면 한다. 더 인내심과 믿음을 가지길 바란다"며 추가적인 보복 조치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중국 외교부와 친강 주미 중국대사가 각각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 초치와 미국 백악관 및 국무부에 대한 입장 표명 형태로 엄중 항의했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3일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은 중국의 통일 대업을 방해하려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며 "대만 문제에서 도발해 문제를 일으키고, 중국의 장대한 발전을 지연시키고, 중국의 평화적 굴기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헛된 일이며,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미국 측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면서 중국의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번 방문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면서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도 100%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당국의 강한 반발과 비판을 의식한 듯 "미국은 호전적인 레토릭(수사)에 의한 위협에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외교부는 2일 성명을 통해 "펠로시 의장 대표단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바위처럼 단단한 지지를 보여주며 대만-미국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펠로시 의장은 2일 밤 미국 현직 하원의장으로는 25년 만에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비롯한 대만 유력 인사들과 회동한 뒤 3일 동아시아 순방 다음 기착지인 한국으로 떠났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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