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조사 통해 실체 파악은 이뤄질 듯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우크라이나 수용소 포로들을 조사할 준비를 마쳤다고 밝히면서도 포격 배후를 규명할 권한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ICRC는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올레니우카 포로수용소 포격 사건과 관련한 설명 자료를 내고 "현장에 의료진과 법의학자들로 구성된 전문 팀을 보낼 준비가 돼 있으며 포로 전원에 접근할 수 있는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사실상 러시아가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인 올레니우카의 포로수용소에서 지난달 29일 발생한 포격 피해를 지칭한다. 당시 포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포로 53명이 숨지고 13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포격의 주체를 상대방이라고 주장하면서 맞섰고, 양측 모두 유엔과 적십자가 이 사건의 실체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ICRC는 포격 배후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자신의 임무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투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인도법(IHL)에 따라 포로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게 본연의 업무라는 것이다.
ICRC는 "우린 사법 절차에 참여하지 않으며 그런 권한이 없다"면서 "이는 수사 기구에서 증언하거나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는다는 뜻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ICRC가 포격의 주체가 러시아인지, 우크라이나인지 판정해 국제 사법기관에 알리거나 외부에 공표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취지다.
이번 조사에 동참하는 유엔은 "ICRC 주도로 이뤄질 조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최근 밝힌 것 외에는 아직 추가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ICRC가 향후 올레니우카 수용소에서 벌일 조사 활동이 포격 사건의 실체 규명과 완전히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법의학자를 대동해 실지 조사를 벌이고 포로들을 면담한다는 것은 ICRC가 포로들의 부상 및 사망 경위를 파악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ICRC가 사망자를 포함한 포로 전원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한 데에는 포격 사건 전후로 실종된 포로가 없는지도 정밀하게 점검하겠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ICRC 본연의 업무대로 포격 전후에 포로들이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를 살피는 과정은 포격 사건의 실체를 발견하는 과정과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포격 전 러시아군이 사상자 발생에 대비해 무덤을 팠다거나 포격 주체를 위장하기 위해 상대방 포탄 흔적을 일부러 사건 현장에 묻으려 했다는 등 최근 국제사회에서 일고 있는 의혹도 포로 면담과 현지 조사에서 단서가 수집될 만한 내용이다.
ICRC는 분쟁 당사국에 국제인도법을 어긴 것으로 의심되는 사항을 놓고 대화를 벌여 이를 바로잡도록 촉구하는 게 자신의 역할의 일부라고 소개했다.
이에 비춰 올레니우카에 수용된 포로들이 포격 피해를 겪는 과정에서 국제인도법에 저촉된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한 뒤 이를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전달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절차는 ICRC의 재량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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