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고질적인 전력난이 겹치면서 이라크의 국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고 있다.
미국 침공이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라크가 여전히 기본적인 기반시설도 제대로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라크는 지난달 중순부터 폭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주 수도 바그다드 기온은 섭씨 50도까지 올라갔고 남부 도시 바스라주(州)는 53도로 치솟았다. 이번 주에도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기온이 48도를 넘나들 것으로 예보됐다.
이런 상황에서 6일 이라크 남부 바스라주, 디카르주, 마이산주에서는 전력 공급이 이틀 연속 중단됐다.
이에 따라 수백만 가구가 선풍기도 없이 암흑 속에서 무더운 밤을 보내야 했다.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식료품도 상해버렸다고 한다. 부모들은 에어컨이 작동하는 자동차에 자녀를 태우고 정처 없이 수 시간을 운전해야 했다고 WP는 전했다.
전력난이 계속되면서 일반 가정은 물론이고 정부 부처까지 이라크에서는 민간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사설 발전업체의 요금은 매우 비싸고, 업체마다 제각각이다. 디젤 연료로 작동하는 발전기가 유독성 매연을 내뿜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지 병원은 몰려드는 열사병·호흡 곤란 환자를 돌보느라 다른 환자를 돌보기가 어려워질 정도다. 의료진은 공기 중의 유독성 매연이 질환을 더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는 지구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꼽히지만 폭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 주민은 WP에 "해마다 '더는 나빠지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여름이 되면 매번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근무 중이던 교통경찰은 신발 바닥이 녹아버렸다고 한다. 그는 "햇볕뿐 아니라 콘크리트 열기와 매연이 있어 더 괴롭다"고 말했다.
이라크가 석유 수출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겠다며 내세우고 있는 농수산업도 최근 이어진 폭염·가뭄에 직격탄을 맞았다. 도심의 건설산업마저 더위 탓에 멎어버린 상태라고 WP는 덧붙였다.
당국도 대책을 내놓고는 있다. 디카르주는 주 공무원 휴일을 9일까지 연장했다. 9일은 이슬람 종교 축제 무하람이 시작되는 날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앞서 4일에도 이라크에서 10개 주 당국이 50도가 넘는 폭염에 운영을 중단했다. 특히 바스라주 항구 도시 공무원에게는 나흘간 휴무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주 공무원 대다수는 휴무가 주어져도 정기적 전력난으로 인해 집에서 냉방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폭염으로 인한 고통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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