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국 예비회의 참여키로…정부 "국익 고려해 결정할 문제"
전문가들 "칩4 참여 땐 중국서도 미일 반도체 장비 안정적 공급 약속받아야"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김기훈 김철선 기자 = 정부가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Chip4)와 관련해 한국·미국·일본·대만 등 4개국 예비회의에 참여하기로 해 칩4 동참 가능성에 조금씩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8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문답에서 칩4 참여 여부와 관련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관련 부처와 잘 살피고 논의해서 우리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칩4가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신중히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운 만큼 강력히 반발하는 중국을 달랠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 칩4 예비회의 참여…"방향성에 대한 우리 의견 제시"
칩4(Chip4)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3월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에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다.
미국은 퀄컴·엔비디아 등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한국·대만은 삼성전자[005930]와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1·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칩4는 한미일과 대만의 반도체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는 일단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칩4 참여는) 순수히 경제적·전략적 차원의 국익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이지 어떤 나라를 배제하거나 폐쇄적인 모임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며 "칩4 예비회의에서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한 우리 나름의 의견을 제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열릴 것으로 보이는 예비회의에서는 칩4의 세부 의제나 참여 수준 등이 구체적으로 조율될 전망이다.
당초 미국이 한국에 통보한 칩4 가입 결정 시한이 이달 말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시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8월 말까지 시한이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때까지 답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동맹이자 반도체 설계 분야 최강국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이 칩4에 동참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위해 일본, 대만과 함께 협력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하고 그 표준과 기술자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칩4 가입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이달 4일 페이스북 글에서 "칩4 가입 요구를 거절했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국익 손실의 크기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기적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는 한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되 최대한 실리를 취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 전문가들 "칩4 참여 불가피…중국 달랠 전략 병행해야"
정부가 칩4 참여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은 중국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분야 최강국이지만 중국은 한국의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다.
중국은 칩4가 반도체 공급망에서 자국을 배제하기 위한 시도라며 연일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산업망과 공급망의 개방 협력을 강화하고 파편화를 방지하는 게 각국과 세계에 유리하다"며 "중국은 인위적으로 국제무역 규칙을 파괴하며 전 세계 시장을 갈라놓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중 교역량 증가 수치를 제시하며 우회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 장관이 이날 기자들에게 칩4 논의와 관련해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폐쇄적인 모임을 만들 생각은 없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은 한국의 칩4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을 달래기 위한 전략을 병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중국이 반도체 원재료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경제보복에 나설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중국을 달래기 위한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다만, 칩4 참여를 계기로 주요국과의 반도체 기술 협력 강화와 시스템반도체 분야 글로벌 고객사 확대가 기대된다"며 "칩4에 참여하면서도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며 실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칩4에 대만이 먼저 가입한 뒤에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칩4에 가입한다는 것을 중국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칩4에 가입하는 모양새로 비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 "칩4 동맹에 가입해도 우리나라의 중국 내 메모리 반도체공장의 향후 업그레이드 및 확장 때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장비와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확약을 받아야 한다"며 "향후 중국 공장에서 안정적 생산을 약속해주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경쟁력 확보 방안과 반도체 인력 교류 활성화도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한국 정부의 칩4 참여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중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만큼 중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칩4 참여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내용이 없어 향후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kak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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