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로 병합 강행…우크라이나 "영토 양보 불가"
점령지 수복·방어 공방전…"헤르손 탈환 여부 전쟁 분수령"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러시아화'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강행하려 하면서 영토 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우리는 영토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점령자들이 '가짜 주민투표'를 추진한다면 그들은 언젠가 필요할 우크라이나, 그리고 자유 진영과 대화할 모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군사적 점령에 그치지 않고 정치·정서적으로도 점령지를 완전히 자국화하기 주민투표를 서두르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와 같은 방식이다.
러시아가 병합할 것으로 보이는 곳은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동부 주(州)다.
러시아군이 최근 점령한 루한스크주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을 대상으로 투표 참여를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르손주 군민 합동정부 부수장 키릴 스트레모우소프는 "주민투표 날짜를 정하기 위해 지역 사회와 협의 중"이라며 "주민들이 이달 내에 투표 날짜를 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투표일은 9월 중으로 잡힐 공산이 크다.
자포리자주 멜리토폴시도 주민투표 준비에 들어갔다.
멜리토폴시 군민 합동정부 수장 갈리나 다닐첸코는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러시아와 연결됐으며 러시아가 이곳에 영구적으로 있을 것을 안다"면서 "주민투표 준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한편으로 점령지의 제도와 교육 등을 러시아화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 국적 취득 절차 간소화 대상을 우크라이나인 전체로 확대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5월 대통령령을 통해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주민 뿐 아니라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주민도 간편하게 러시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번 대통령령으로 점령 여부와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모든 국민이 러시아 국적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늘어날지 모르는 점령지 주민 모두에게 러시아 국적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셈이다.
3월 중순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주 전역과 자포리자주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러시아 루블화가 법정화폐로 통용된다. 또한 이들 지역에서는 공용문서가 러시아식으로 바뀌는 등 각종 러시아 체계가 도입됐다.
점령지에서는 우크라이나 학생을 '러시아 국민'으로 키우기 위한 러시아식 교육 프로그램도 시작됐다.
러시아 당국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러시아인 교사 수백 명을 우크라이나 점령지 학교에 파견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점령지에 새로운 군민 합동정부를 설치했으며 주요 도시에서는 러시아가 임명한 시장으로 교체됐다.
러시아는 이런 형식적 요건을 갖춘 뒤 점령지에서 '주권적' 입지를 공고히 한 후 휴전이나 종전 협상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은 자국 영토의 일부라도 러시아에 넘기는 방식의 평화협상은 불가하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화'를 막기 위해 이들 점령지를 탈환하는 작전을 본격화했고 러시아는 이에 맞서 이 지역에 병력을 증강했다.
탈환작전의 최우선 지역은 헤르손이다.
이 도시는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와 연결되는 남부의 전략 요충지로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인 3월 이 지역을 점령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탈환 여부가 이번 전쟁의 향배를 가를 분수령이라고 분석한다.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을 되찾는다면 전쟁 수행 능력을 입증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계속 지원할 명분이 되고,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이어나갈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점령된 영토를 수복하려는 우크라이나의 공세에 대해 러시아는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으로 간주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 탈환에 실패하고 러시아가 남부 요충지를 병합한 뒤 러시아화를 강행하면 이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단을 원하는 서방의 압력으로 크림반도∼돈바스로 이어지는 지역을 러시아군에 넘겨준 채 휴전에 들어가면 최악엔 우크라이나가 분단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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