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국회의원 회관서 간토학살 다큐 상영…"한국 정부가 나서야"

입력 2022-08-10 19:37  

日국회의원 회관서 간토학살 다큐 상영…"한국 정부가 나서야"
오충공 감독 "제노사이드…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거의 벌거벗거나 바지만 입은 사람들 6∼7명이 철사로 이렇게 뒤로 묶여서 줄줄이 왔다. (중략) 불길이 활활 타는 곳에 와서 멈추더니 몸통을 잡고 다른 한 명은 다리를 잡고 한명 한명을 이렇게 불타고 있는 코크스 속에 던졌다."(다카세 요시오 씨)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한 후 혼란스러운 와중에 일본 자경단, 경찰, 군인이 조선인을 대거 학살한 이른바 간토 학살 목격자의 증언이 10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중의원 제1의원 회관에 울려 퍼졌다.
이는 간토 학살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온 재일교포 오충공 감독의 영화 '숨겨진 손톱자국'(1983년 작)에 담긴 장면의 일부다.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희생자 추도 대회 실행위원회'(준비회)가 간토 학살 100주년을 약 1년 앞두고 개최한 기록 영화 상영회에서는 일본 정부가 학살의 책임을 인정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본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스기오 히데야 참의원 의원은 일본 정부가 그간 간토 학살에 관한 질의에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지적하고 "이를 역사에 파묻히게 하는 것은 절대 용납이 안 된다"며 정부의 관여를 인정하고 제대로 사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오 감독은 간토 학살이 "당시 조선인이었다면 누구든지 살해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심지어 도쿄 가메이도 경찰서에서는 임신부의 배를 일본도로 갈라 살해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간토 학살이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해 절멸시키려고 하는 이른바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하고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따로 만난 오 감독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외교적으로 (문제 제기) 한 것이 한 번도 없다"며 간토 학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23년 임시정부 측이 독립신문을 통해 '사과하라, 진상 조사하라'고 일본에 항의했으나 일본은 대답을 안 하고 넘어갔다면서 광복 후에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 정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오 감독은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항의하거나 질문하지 않으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며 간토학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재일동포나 일본 시민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간토학살 문제를 다루는 세 번째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며 학살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공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간토학살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발생한 규모 7.9의 대지진(간토대지진)이 도쿄 등 간토 지방을 강타한 후 재일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이 다수 살해된 사건이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는 등 조선인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유언비어가 빠르게 유포됐으며 일본인 자경단, 경찰, 군인이 학살을 주도했다.
학살된 희생자는 6천명이 넘는다는 분석이 있으나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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