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손자 세대에도 농사가 될까"…美 농부의 한숨

입력 2022-08-12 08:02   수정 2022-08-12 09:14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손자 세대에도 농사가 될까"…美 농부의 한숨
미시시피 삼각주의 72세 농부 "봄·가을 사라지고 이젠 여름·겨울만"
비 점점 안오고 더워진 날씨에 해충도 비정상적으로 늘어


(마크스[美 미시시피]=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자신의 하얀 염소수염과 닮은 염소가 그려진 모자를 일부러 찾아 쓴다는 농부 존 맥니스(72)씨의 첫인상은 유쾌하고 장난스러운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 남부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노골적이었던 1960년대 당시 흑인 청소년으로서는 가장 큰 꿈이었던 교사에 도전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면서 젊은 시절과 미시시피주의 예전 얘기를 한참 들려줬다.
그러나 올해 미시시피 삼각주의 농사 상황이 화제가 되자 맥니스 씨의 얼굴은 무겁게 굳어졌다
미시시피주 마크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예전같지 않은 기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건조하고 더운 여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졌어."
미시시피주는 미국의 남단에 위치한다고는 해도 사계절이 명확했지만 이제는 여름과 겨울, 단 두 개의 계절만 존재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건조하고 긴 여름이 단지 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데 그친다면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일생에 생업으로 삼은 농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맥니스 씨의 걱정이다.
봄에 땅이 촉촉한 상태에서 씨를 뿌려야 싹이 난 뒤 뿌리가 내리기 쉽고, 여름이 무덥고 습해야 식물이 제대로 성장하는데 여름 가뭄이 전통적인 농사의 상식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맥니스 씨가 올해 봄에 콩을 경작키로 한 것은 콩 농사가 목화나 옥수수보다 쉽다는 잇점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맥니스 씨는 "콩은 씨를 뿌린 뒤 물만 주면 알아서 잘 자라주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비교하면 훨씬 쉬운 농사인데, 정작 비가 점점 안 오니…"라고 말한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름 기온이 올라가면서 농작물을 해치는 해충인 바구미가 급증한 것도 맥니스 씨의 고민이다.
과거에도 해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운 날씨 때문에 바구미가 비정상적으로 번식했다는 것이다.
특히 바구미는 콩을 포식할 뿐 아니라 다 자란 콩에 알을 낳기 때문에 수확 직전에 살충제를 다시 뿌려야 한다고 한다.
비싼 돈을 주고 비행기로 해충제를 뿌려주는 업체와 계약을 하는 것은 경작 규모가 작은 농부 개개인에겐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는 "예전에는 살충제를 딱 한 번만 뿌리면 됐는데 이제는 수확 직전까지 포함해 모두 두 번을 뿌려야 하니…"라며 혀를 찼다.
맥니스 씨는 대화가 끝날 무렵 "그래도 올해 콩을 심은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묻자 맥니스 씨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콩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는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맥니스 씨는 "콩값이 오른데다가 연방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덕분에 이런 흉작에도 지난해보다 결과적으론 들어오는 돈은 더 많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목화를 심은 다른 농부들도 내년에는 아마 다 콩을 심을걸"이라고 예측했다.
흉작에도 콩 가격 상승으로 재미를 본 농부들의 이야기에 주변 농가들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콩 경작이 급증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도 맥니스 씨는 당장 수익이 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는 꼭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맥니스 씨는 "이런 식으로 무덥고 건조한 여름이 길어져도 당장은 버틸 수 있지. 그런데 손자 세대에도 이런 식의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아예 미시시피에서 농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kom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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