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년] ① 미중 전략경쟁 속 한중관계 향배는

입력 2022-08-16 07:11   수정 2022-08-16 07:38

[한중수교 30년] ① 미중 전략경쟁 속 한중관계 향배는
탈냉전 때 손잡았던 한중, 신냉전 문턱서 '뉴노멀' 정립 필요
전문가 "실용 외교" "입장 유사한 중견국들과 연대 강화" 강조

[※ 편집자 주 = 한국과 중국은 냉전이 종식된 후인 1992년 8월 24일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수교 30년 동안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속에 경제·통상과 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교류하며 발전 성장해왔지만 지정학적 한계와 상호 신뢰의 부족으로 여전히 '가깝고도 먼'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전략경쟁 여파로 한중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공급망·반도체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양 국민 간 감정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대중 무역수지도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중관계는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 현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전망 등을 조망하는 특집기사 7편을 송고합니다.]

(베이징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김효정 오수진 기자 =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둔 서울과 베이징에서 축하 분위기를 느끼긴 어렵다.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과 급변하는 국제질서의 흐름이 한중관계를 미묘한 상황으로 몰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포스트 냉전'과 중국 개혁개방, 한국 북방정책의 훈풍을 타고 1992년 8월 24일 외교관계를 수립한 양국은 지리적 인접성, 경제적 상호보완성, 문화적 유사성에 바탕을 두고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수교 30년 만에 '신냉전'으로 불리는 국제질서의 대격변 속에서 양국 관계는 분기점에 섰다.
수교 30주년을 직전에 둔 지난 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중국 칭다오에서 만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놓고 오갔던 논란이 최근 한중관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두 사람은 사드 문제가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데 뜻을 모았지만, 중국은 회담 다음날인 10일 이른바 '사드 3불'(不)(사드 추가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한미일 군사동맹 불참)에 더해 1한(限·기존 사드 운용 제한)까지 들고나왔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밤부터 1박 2일간 대만을 방문한 데 대응해 중국이 고강도 대만 포위 군사훈련으로 무력 시위에 나서 역내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었다.

2016년 불거진 이후 잠잠해지는 듯했던 사드 갈등이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할 가능성까지 제기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중 전략경쟁 때문이다.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탐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도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로 보고 있는 한국에 선별적으로 유화 제스처를 내보이기도 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사드 문제 외에 중국의 러브콜과 견제를 동시에 받고 있는 분야는 반도체다.
미국이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하는 상황에서 한국을 한중간 반도체 협력의 틀에 붙들어 두는 것은 중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중국이 한국의 '칩4'(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 참여에 견제 메시지를 내면서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속도전과 공급망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한국 수출액의 25% 안팎을 차지하는 한중 교역은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지만 대중국 교역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제약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됐다. 그런 면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인식이다.
여기에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는 상대국에 대한 국민감정도 양국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중관계가 우리의 안보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양국이 경제를 비롯한 상호 호혜적 영역에서 상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관계 구조의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한미동맹이라는 외교·안보정책의 주축을 견고히 하면서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명실상부하게 유지하는 영민한 외교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도한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이면서 시장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외교안보 분야로 '차이나 리스크'가 전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울러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미중 전략경쟁 구조에 종속되지 않는 길도 제시돼야 한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이데올로기 중심보다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미중 사이에서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외교를 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서도 미중 간 협력 구도가 필요한 만큼 한국이 미중 사이의 중재자 내지 소통 촉진자로 나서지 않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된다"고 덧붙였다.
대중국 관계에 대한 고민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행보에서 드러난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중 상호 존중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은 직전 문재인 정부 시절의 미중 사이 균형외교 기조를 접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등으로 대미 접근 기조를 보여왔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의 이해가 걸린 칩4 참여 문제에서부터 전략적 고민이 본격 시작된 모습이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직후 방한했을 때 그를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 중국에서 '윤석열 버전'의 균형외교 신호로 간주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한미동맹을 여전히 최우선으로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고 한중 간 입장도 차이가 있겠지만 중국과 적대적 관계로 돌입하면서 즉각적 비용을 너무 많이 지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외교"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 소장은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거대한 늪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세계의 다른 중견국과 함께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나가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들어서 윤석열 정부가 적어도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중국에 발신하는 등 미묘한 변화도 엿보이고 있다"며 "그런 방향은 옳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jhcho@yna.co.kr, kimhyoj@yna.co.kr, kik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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