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강연 직전 20대 남성 급습…"한쪽 눈 실명할 듯"
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에 살해위협…2016년 미 시민권 취득
(뉴욕·서울=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김연숙 기자 = 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킨 소설 '악마의 시'로 유명한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5)가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에서 강연 도중 흉기 피습을 당했다.
AP,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루슈디는 이날 오전 셔터쿼 인스티튜션에서 강연하기 직전 무대 위로 돌진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목과 복부를 찔렸으며, 곧바로 지역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루슈디의 대변인 앤드루 와일리는 루슈디가 현재 인공호흡기로 호흡하고 있으며, 팔 신경이 절단되고 간이 흉기에 찔려 손상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 한쪽 눈을 잃을 것 같다고 전했다.
피의자의 신원은 뉴저지주 페어뷰에 거주하는 하디 마타르(24)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심문을 앞두고 있다. 범행 동기는 불분명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사건 발생 시점은 진행자가 약 2천500명의 관중에 루슈디를 소개하던 시점이었다. 피의자는 무대 위 소파에 앉은 루슈디에게 다가가 10∼15차례에 걸쳐 흉기 또는 주먹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진행자도 공격을 받아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진행자는 박해받는 외국작가들을 돕기 위한 미국 비영리단체 '시티 오브 어사일럼'의 공동 설립자 헨리 리스(73)였다.
이날 강연은 망명 작가와 예술가들의 피난처로서 미국의 역할을 주제로 루슈디와 리스가 대담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셔터쿼 인스티튜션은 버펄로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으로, 정신적 수양과 교육을 원하는 방문객들이 찾는 여름 휴양지로 알려졌다.
휴가차 가족들과 현장을 찾았다가 범행 장면을 목격한 AP 기자는 "충격적인 순간이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전혀 예상치 못할 장소였다"고 말했다.
강연 현장에는 주 경찰관과 카운티 보안관보가 배치됐지만 범행을 막지는 못했다.
AP는 루슈디가 오랫동안 신변에 위협을 받아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 엄격한 보안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관객은 범인이 검은색 옷차림에 검은색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면서, 처음에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루슈디가 아직 '논란의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의 일부로 착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루슈디는 1988년 발표한 소설 악마의 시와 관련해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슬람권의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이슬람권 국가 대부분이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것은 물론, 1989년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사실상 루슈디 처형 명령을 내렸다. 루슈디는 물론 이 책의 출판에 관여한 누구라도 살해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선포한 것이다.
이에 루슈디는 한동안 가명으로 숨어지내야 했고, 1991년에는 이 책의 일본어 번역가가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란 정부가 1998년 루슈디에 관한 파트와를 더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후에야 조금씩 공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란 정부와 연계된 다수 단체는 여전히 루슈디의 목에 건 수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호메이니의 후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2017년 말 '파트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인도 뭄바이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한 루슈디는 2016년 미 시민권을 취득하고 뉴욕시에 거주해왔다.
루슈디는 그 외 자신의 은신 생활에 대해 다룬 자전적 회고록과 소설 '미드나이트 칠드런'을 썼고, 내년 2월 새 소설 '빅토리 시티'를 출간할 계획이다.
루슈디가 이끄는 표현의 자유 옹호 단체 '펜 아메리카'는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며 "충격적이고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트위터에 "루슈디는 우리가 결코 옹호하길 중단해서는 안 되는 권리를 행사하다 공격을 받았다"고 개탄했다.
firstcircle@yna.co.kr
noma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