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가뭄 속 물부족…"머리 매일 감지마" 지침까지
러 가스차단 맞서 '절약'…냉방·온수 끊으며 벌써 고통분담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유럽의 고난이 계속되고 있다. 여름철 폭염·가뭄과 사투가 끝나도, 다가올 겨울엔 날뛰는 가스 값과 다시 씨름해야 한다.
유럽 주요국들은 회원국 머리를 매일 감지 말라, 호스를 사용하지 말라는 등의 주문으로 가뭄에 대처하고 있다.
겨울에 쓸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교통량이 적은 시간대에 신호등까지 꺼버리는 등 극단적 대책도 벌써 가동되고 있다.
◇ 기록적 가뭄·폭염에 말라버린 주요국 젖줄
13일(현지시간) 코페르니쿠스 대기감시서비스(CAMS)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유럽은 극도의 장기 폭염과 고온건조한 대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서부와 스페인,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산불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6∼8월 산불로 배출된 온실가스양이 200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환경청은 강수량, 주요 하천·지하수 유량 등을 근거로 12일(현지시간) 영국 일부 8개 지역을 공식 가뭄 지역으로 선포했다.
1935년 이후 최악의 가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영국은 3월 이후 5달 연속 월간 강수량이 예년 수준을 밑돌고 있다. 7월은 강수량이 평년의 20% 수준에 그쳤다.
가뭄이 선포된 지역에서는 수도업체가 취수원인 하천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이미 영국 템스강, 독일 라인강, 이탈리아 포강, 프랑스 루아르강 등은 하천이 수위가 낮아지다 못해 이제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 "머리 매일 감지 말라" 물부족에 일상까지 타격
영국 수도업체들은 자사 고객의 '호스' 사용을 금지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호스를 수도꼭지에 연결해 잔디·화분에 물을 주거나 세차를 할 수 없게 됐다.
영국 당국도 일반 가정에 '물 사용량 줄이기'를 호소하고 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하는 대신 간단한 샤워를 하자는 권고가 나오고, 머리를 매일 감지 말라는 당부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를 보낸 뒤 즐기는 느긋한 샤워도 유럽에서는 사치가 되고 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장관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도 샤워 시간을 줄였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자국민에게 샤워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여달라고 몇 개월째 당부하고 있다.
독일 라인강 등에서는 수위가 낮아져 바지선 운송이 제한되면서 경제 전반이 타격받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 목타는 여름 버티더라도 '춥고 비싼 겨울' 예고
시간이 흘러 더위가 한풀 꺾여도 문제는 남는다. 겨울엔 치솟은 가스값에 대처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의 전체 천연가스 수입 40%를 책임지던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로 휘두르며 칼춤을 추고 있다. 가스값은 작년의 몇 배씩 널뛰기 중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러시아에 고강도 제재를 부과했으나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는 낮추지 못한 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스관 밸브를 틀어쥔 채 제재 해제를 압박하고 있다.
유럽은 서둘러 대체 에너지원을 물색하고 있지만 속도는 매우 느리다. 신재생에너지 전환도 아직 비중이 크지 않다. 탈원전을 미루고 저질 갈탄으로 화력발전에 나서는 국가도 있다.
각국은 어쩔 수 없이 당장 '에너지 사용 저감 정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EU는 모두 함께 에너지를 아끼는 고통분담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앞으로 8개월간 가스 소비량을 15% 줄이기로 결의했다.
◇ 명소에 야간조명 꺼지고 사우나 온도까지 낮춰
특히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55%에 달하는 독일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베를린은 관광명소의 야외조명 1천400개를 껐다. 베를린 전승기념탑, 샤를로텐부르크성,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의 조명이 꺼졌다.
인근 포츠담시에서는 공공수영장 물 온도도 낮췄다. 사우나 온탕 온도까지 5도가량 낮췄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뮌헨시는 시청 온수공급을 중단했고, 야간 분수 가동을 중단했다. 일부 지역은 교통이 적을 때 신호등까지 꺼버렸다.
다음 달 중순부터 2주간 뮌헨시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축제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행사 장소의 난방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공공기관 난방 온도를 21도로 제한했다. 에너지 비축을 위해 여름 에어컨 냉방 온도도 25도 밑으로는 내리지 못 하게 했다.
스페인은 더 강도 높은 온도 제한 정책을 도입했다. 2023년까지 난방 온도는 19도로, 냉방 온도는 27도로 제한됐다. 냉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 건물의 자동문 설치도 의무화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주는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관광산업이 훼손된다"며 이런 에너지 저감 정책에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편을 감내하지 못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싼 가스 사용료 고지서를 각오해야 한다고 WSJ은 지적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유럽은 이번달 초를 기준으로 전체 가스 저장 용량의 71%를 비축했다. 11월1일 목표치에는 9% 부족하다.
독일 하노버시 벨리트 오나이 시장은 "지금 1kWh(킬로와트시)를 아끼면 겨울에 쓸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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