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에 돌연변이 있어…우리나라에선 '시스-AB형' 종종 보고
"B형으로 알았던 부모에게 약한 A형 숨어있다면 자녀 A형 가능할 수도"…확률은 극히 낮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26년 전 시험관 시술로 낳은 아들의 유전자가 남편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사실을 접한 50대 여성 A씨의 사연이 이슈가 됐다.
A씨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아이가 5살쯤 검사를 했는데 소아과에서 '아이가 A형인 거 알고 계시죠'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B형이다"라며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어 다시 검사했지만 (저희 둘은) B형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혈액형 검사 결과를 토대로 시험관 시술을 했던 담당 교수에게 물어봤지만, 해당 교수는 "시험관 아기한테는 돌연변이 사례가 있을 수 있다.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20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유전자 검사를 했다가 아들의 유전자가 자신과는 일치하지만 남편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A씨의 사연을 전하며 "A씨 부부의 혈액형은 모두 B형이라 혈액형 조합상 A형 자녀가 나올 수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A씨 아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의 병원 측 실수 가능성 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부모의 혈액형이 모두 B형이면 A형 자식이 나올 수 없는 걸까.
흔히 알고 있는 혈액형 상식으로는 부모 모두 B형일 경우 자식의 혈액형은 B형이나 O형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혈액형에도 돌연변이가 있기 때문이다. 혈액형만으로는 가족이나 친자 관계를 100%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대한수혈학회 등에 따르면 현재 ABO 혈액형과 Rh 혈액형 시스템을 포함해 30개의 혈액형 분류시스템과 328개에 이르는 항원이 밝혀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ABO 혈액형은 9번 염색체에 존재하는 ABO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A와 B 전이효소의 발현에 따라 A, B, O, AB형으로 나뉘지만, 항원이 약하거나 일반적인 것과 다르게 표현되는 수많은 아형이 존재한다. 이는 개인 간 A, B 전이효소를 만드는 유전 정보의 차이 때문이다.
최수인 순천향대 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ABO 유전자의 특정 부위에 변이가 생기면 일반적인 A, B, O, AB형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으며 이들을 통칭해 ABO 아형이라고 부른다"며 "일부 A형, B형 아형은 검사에서 일반적인 혈액형과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O형으로 오해할 정도로 약하게 발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ABO 아형이 국내에서 종종 보고되는 '시스-AB'(cis-AB) 혈액형이다.
시스-AB형은 혈액 내의 A형 또는 B형 어느 한쪽의 특성(항원성)이 아주 미약해 일반 혈액형 검사에서 A형 또는 B형으로 진단되는 비정형 AB형을 가리킨다. 보통 정밀검사를 통해서야 비정형 AB형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시스-AB형은 유전자가 A와 B 두 가닥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한쪽에 몰려 있어 AB형과 O형 부모 사이에서 AB형이나 O형인 자녀가 나올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AB형과 B형 부모 사이에서 O형 자녀도 나올 수 있다.
시스-AB형은 한국의 서남부 지방과 일본 규슈(九州) 지역에서 주로 보고된다.
2015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돌연변이에 의한 시스-AB형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조덕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팀과 신희봉 순천향의대 교수팀이 수혈의학 전문 국제학술지(Transfusion Medicine)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한 29세 여성은 부모 모두 정상 B형임에도 시스-AB형 판정을 받았다.
통상 시스-AB형이 부모 중 한쪽에서 AB형의 유전형질을 물려받아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부모에게 시스-AB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고 본인에게서 처음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해 생긴 것이다.
이번에 이슈가 된 A씨의 사례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불일치했기 때문에 논외지만, 혈액형 돌연변이 등을 고려하면 B형 부모 사이에서도 A형 자녀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예를 들어 부모가 B형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B형과 더불어 아주 약한 A형을 가지는 경우라면 A형 자녀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수인 교수는 "부모 중 한 명이 아주 약한 A형 아형을 갖고 있어서 이를 물려받고 다른 부모에게 O형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우 자녀에서 약한 A형으로 발현될 수는 있다"면서 "다만 ABO 아형의 총 빈도는 국내에서 1% 미만이며, O형만큼 약한 A형 아형의 빈도는 그중에서도 1% 내외이기 때문에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수혈학회장을 지낸 한규섭 서울대 의대 검사의학교실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시스-AB형일 경우 혈액형을 A형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B형은 약하기 때문에 B형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작다"며 "시스-AB형 때문에 A형 사이에서 B형이 나올 가능성은 있어도 B형 사이에서 A형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A형(A1.01)과 B형(B.01)은 총 7개의 염기서열 차이가 존재하며, O형(O.01.01.)의 경우 A형에서 261번째 염기서열이 결실돼 발생한다.
최수인 교수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BO형이고 자녀가 부모에게 각각 0형 유전자를 물려받고 그중 하나 이상의 O형 유전자의 261번째 염기서열에 G(구아닌)가 다시 삽입되는 경우 A형으로 발현될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또 B형이 A형으로 변경되는 것은 일곱 군데에서 변이가 발생해야 하므로, 더 가능성이 작다.
다만 A씨의 경우에는 유전자 검사가 불일치로 나왔기 때문에 친자 관계가 성립할 수 없어 혈액형 돌연변이 가능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규섭 교수는 "혈액형으로 친자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보통 유전자 검사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혈액형이 안 맞을 경우 혈액형 돌연변이 가능성을 의심하고 정밀 검사를 하게 되지만 이 경우는 유전자 검사가 불일치하기 때문에 혈액형 돌연변이와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A씨의 시험관 시술을 담당했던 교수의 설명과 달리 시험관 시술이 혈액형 돌연변이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규섭 교수는 "혈액형 돌연변이와 시험관 시술은 무관하다"며 "시험관 시술을 했다고 해서 엉뚱하게 혈액형이 바뀌었다거나 하는 사례를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최수인 교수 역시 "시험관 시술시 혈액형 돌연변이가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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