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압축되면 '활성 상태' 전환 vs 콜레스테롤 들어차면 활성화 제동
스위스 바젤대 연구진,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G 단백질 결합 수용체'(GPCR)는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생리 반응이 일어날 때 촉매 역할을 한다.
예컨대 꽃을 감상하고, 음식을 맛보고, 따뜻하거나 추운 걸 느끼는 건 모두 이 수용체 덕분이다.
또 영양분, 빛, 냄새, 호르몬, 스트레스 등의 감지도 이 수용체를 통해 이뤄진다.
GPCR은 세포질과 세포 외면 사이의 세포막에 있다.
세포막을 일곱 번 통과하는 구조여서 '7-막 관통 수용체'(7TMR)로 불리기도 한다.
GPCR은 자기 구조를 바꿔 세포 외부의 감각 정보를 내부에 전달한다.
오래전부터 질병 치료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매력적인 표적인 GPCR을 주목해 왔다.
실제로 GPCR 연구가 현대 의학과 약학 등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인 의약품 가운데 약 3분의 1은 GPCR을 표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향후 임상 의료와 제약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GPCR의 공동(空洞 ㆍvoid) 제어 메커니즘이 발견됐다.
GPCR이 활성화할 때는 이 공간이 쭈그러들어 전체 구조가 변했다.
하지만 공동 가운데 어느 하나가 채워지면 GPCR이 최고 수위까지 활성화하지 못했다.
스위스 바젤대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논문으로 게재됐다.
24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올라온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GPCR은 크게 A부터 F까지 6개 유형으로 나뉜다.
A형은 빛을 감지하는 로돕신, 냄새를 감지하는 후(嗅) 감각 수용체, 아드레날린(또는 노르아드레날린) 감지 수용체 등이 있다.
또 펩타이드 수용체는 B형에,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와 미(味) 감각 수용체는 C형에 속한다.
GPCR의 구조는 리간드(수용체 결합 물질)가 달라붙으면서 바뀌고, 이렇게 구조가 변한 GPCR은 다시 G 단백질과 연결돼 2차 메신저 반응을 매개한다.
우리 몸에 있는 826종의 GPCR은 서로 다른 자극에 반응하면서도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바젤대 연구팀은 GPCR의 신호 전달 체계를 원자 수준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구체적인 연구 대상은 이른바 '투쟁-도피'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β1-아드레날린 수용체였다.
아드레날린의 결합으로 이 수용체가 활성화하면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 맥박과 혈압이 증가한다.
협심증과 고혈압에 많이 쓰는 '베타 차단제'(Beta-blocker)는 이 수용체를 억제하는 것이다.
고압 NMR(핵자기 공명) 촬영과 X-선 산란 기술 등을 동원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수용체의 영상을 확보했다.
흥미로운 공동 구조는 여기서 확인됐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라이아라 아비코 박사는 "지금까지 GPCR의 공동은 물로 채워져 있다고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일부는 비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공간은 GPCR이 활성화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용체의 구조는, 메마른 공동이 압축돼 사라지면서 변했다. 이때 수용체는 마치 젖은 스펀지를 짜는 것처럼 쭈그러들었다.
β1-아드레날린 수용체가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킬 때도 이런 구조 변화가 열쇠 역할을 했다.
연구팀은 이런 공동 2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데 이어 세포막의 주요 성분인 콜레스테롤이 이 가운데 하나를 필요할 때마다 가득 채운다는 걸 알아냈다.
놀랍게도 콜레스테롤은 수용체가 쭈그러져 완전 활성 상태로 변하는 걸 막는 쐐기 역할을 했다.
과학자들은 수용체를 제어하는 이 '쐐기 효과'의 발견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같은 유형(type)에 속하는 GPCR도 메마른 공동의 위치는 다르다.
수용체의 마른 공간을 채우는 '쐐기'가 매우 선별적인 약물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기존의 약물은 GPCR의 유형이 달라도 결합하는 위치는 비슷하다.
이런 식으로 유도되는 약물은 한 개 이상의 수용체와 결합해 부작용을 일으키곤 한다.
아비코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를 적용하면) 원하는 특정 수용체에만 작용하는 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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