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독, 일, 벨기에 등…에너지위기 대응·탄소배출 감축에 도움
에너지 청구서 급등에 반대 정서도 약화…신규 건설보다 경제적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발 서방의 에너지 위기 여파로 숨통이 끊기기 직전이었던 원전 수십 기의 수명이 세계 곳곳에서 속속 연장 수순을 밟고 있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일본 등이 현재 사용 연한이 지났거나 임박한 원전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자금과 정치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벨기에는 2025년 중단 예정인 원전 2기의 가동을 2036년까지 연장하려는 방침을 추진 중이다.
독일은 당초 올해 말까지 자국 내 모든 원전을 폐쇄할 계획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남아 가동 중인 원전 3기의 수명을 내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놓고 정치권의 토론이 한창이다.
일부 독일 정치인들은 눈앞에 다가온 에너지난을 거론하며 이들 원전을 내년까지가 아닌 더 오랜 기간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력의 약 8%를 생산하는 디아블로 캐니언 원전 역시 가동 연장이 검토되고 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024년 폐쇄가 예정된 이 원전을 최소 2029년까지 기한을 늘려 가동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영국의 경우 2028년까지 현재 가동 중인 원전들을 폐쇄할 예정이지만, 현지 원전운영사인 EDF 에너지는 자사가 소유한 원자로의 가동 연한을 20년 늘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때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 이후 원전에 미온적이었던 일본 역시 현재 최장 60년인 원전의 운전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지난 24일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아울러 운전 중단 상태인 원전의 재가동도 추진하기로 하는 한편, 원전의 신·증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원전 정책의 전환을 천명했다.
이처럼 수십년의 설계 수명이 거의 다한 원전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세계적인 흐름에는 당면한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고, 금세기 중반까지 온실가스 제로 달성을 촉구하는 유엔 기후변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에너지가 필수적이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반영돼 있다고 WSJ은 진단했다.
러시아에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각국과 일본 등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부과한 서방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가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축소하자 올 겨울 난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또한 치솟은 가스가격에 각 가정의 에너지 청구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독일과 일본 등에서는 원전 반대 정서가 약해진 것도 서방의 원전 연장 흐름에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프랑스가 자국에 있는 57기의 원전들을 원래 수명인 40년 후에도 계속 가동하기 위해 안전비용으로만 500억 유로를 책정하는 등 원전 수명 연장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지만, 이런 비용에도 불구하고 기존 원전을 계속 쓰는 것이 신규 원전 건설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점도 각국이 원전 가동 연장에 나서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WSJ은 짚었다.
아울러, 현재 프랑스가 14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하고 있고, 영국과 체코, 폴란드 등도 신규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지만 실제로 원전이 착공돼 소비자가 쓸 전력을 생산하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에너지 위기 속에 원전 연장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측면도 있다.
또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거의 하지 않아 2050년까지 '넷 제로'(탄소순배출량 0)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원전 수명을 늘리는 것은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대체 에너지로 교체하는 것보다도 비용이 더 싸게 먹힌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밝혔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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