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후 국내 진출…부실 기업·채권·부동산 이어 외환은행 인수로 주목
대주주 자격, 불법·부실·헐값 매각, 먹튀, 주가조작 등 논란…노조와도 갈등
"사업장 없는 한국에 세금 못 낸다" 과세당국과도 10년 다툼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소송 관련 판정이 31일 나오면서 론스타와 우리나라의 약 20년에 걸친 악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년 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불거진 대주주 자격·매각 가격 관련 의혹은 결국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졌고 한국 과세 당국과의 공방은 국내외 그 어떤 기업보다 치열했다.
◇ 각종 연기금 등이 투자한 폐쇄형 사모펀드…극동건설·스타타워·외환은행 잇따라 인수
론스타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PEF)다. '론스타(외로운 별)'라는 이름 자체가 텍사스의 상징으로서 주기(州旗)에도 새겨진 한 개의 별에서 온 것이다.
하버드대 출신인 존 그레이켄 회장이 텍사스 인맥을 바탕으로 자금을 끌어모아 1995년 론스타를 창립했다.
이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는 미국의 교원 연금·대학 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 국제금융기구뿐 아니라 석유 재벌 등 개인 부호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폐쇄형 펀드이기 때문에 구체적 투자자들은 공개되지 않는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한국에 진출해 자산관리공사(캠코) 등으로부터 매입한 부실채권을 되팔아 이익을 거뒀고, 2000년대 들어 외환위기 이후 자금난을 겪는 국내 기업과 부동산도 사들였다. 극동건설, 서울 역삼동 I-타워(론스타 매입 후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론스타가 본격적으로 한국 대중과 언론에 이름을 알린 것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정부는 외환위기 충격에 카드대란까지 겹쳐 부실이 한계에 이른 외환은행의 매각을 추진했는데, 제의를 받은 국내 시중은행들은 물론 해외 금융기관도 선뜻 인수에 나서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거의 유일하게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이 바로 론스타였다.
론스타는 결국 같은 해 10월 약 1조3천억원(1조원 신주 인수+정부·코메르츠방크 지분 3천억원 매입)을 들여 지분 51%를 확보하고 외환은행의 새 주인이 됐다.
◇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헐값 매각 논란에 감사·검찰조사 '후폭풍'
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직후부터 대주주 자격 등을 놓고 적법성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은행법은 비금융 부문의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인 산업자본(비금융 주력자)이 은행의 주식을 10%(의결권 있는 주식은 4%) 이상 가질 수 없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예외 규정인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은행법 시행령 제8조2항)를 적용, 2003년 9월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다.
'부실'의 주요 근거는 외환은행으로부터 받은 5장 팩스에 담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추정치 '6.16%'였다. 이 팩스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논란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블랙머니)에서도 사건의 핵심 단서로 묘사됐다.
BIS 비율이 정상 기준(8%)에 미치지 못하는 부실 상태라 산업자본 판단에 앞서 예외 규정만으로도 론스타의 인수가 가능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지만, 투기자본감시센터 등 시민단체는 2003년 말 외환은행의 실제 BIS 비율이 9.32%였던 점 등을 들어 '불법·졸속·헐값' 매각을 주장했다.
감사원까지 2006년 6월 '론스타에 인수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감사 결과를 내놓자 검찰은 결국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을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이 전 행장, 변 전 국장은 이후 2010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한국정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으로 손해"…6조원 규모 ISDS 소송
산업자본, 대주주 자격 논란은 결국 외환은행 재매각 과정에서 론스타의 발목을 잡았다.
외환은행 인수 후 론스타는 인력 구조조정 등을 통해 이익과 주주 배당을 늘렸고, 이 과정에서 노조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6년 1월 론스타는 다시 외환은행을 시장에 내놨고, 3월 국민은행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지만 '헐값 인수' 논란 관련, 검찰 수사와 감사원 조사 등으로 협상이 표류하자 론스타는 11월 국민은행과의 지분 매각 계약을 파기했다.
이듬해인 2007년 9월에는 HSBC가 외환은행 지분 51%를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하고 12월 금융위원회에 지분 인수 승인까지 신청했다.
하지만 역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과 대주주 자격 요건 등에 대한 법정 공방 속에 승인이 미뤄지고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쳐 외환은행 가치가 떨어지면서 HSBC도 1년 만에 인수를 포기했다.
이후 하나금융지주가 2010년 11월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2011년 10월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받자, 금융위원회는 론스타에 외환은행 지분 10%만 남기고 41%를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은행의 대주주가 금융 관련 법령 위반으로 처벌을 받으면 10% 한도를 초과해 주식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론스타는 2012년 2월 하나금융지주에 보유 지분 51%를 3조9천157억원에 모두 넘기고 한국을 떠났다. 콜옵션 행사로 추가 확보한 지분(코메르츠방크·수출입은행 보유 지분)의 매각 차익과 배당금 등까지 더해 외환은행 인수·매각으로 론스타가 거둔 이익이 세전 약 4조7천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오자 '먹튀' 논란도 커졌다.
그러나 론스타와의 악연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론스타는 같은 해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무려 46억7천950만달러(현재 약 6조2천860억원) 규모의 ISDS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금융당국의 매각 승인 지연으로 HSBC에 약 5조9천376억원을 받고 팔아야 할 지분을 결과적으로 약 3조9천억원에 매각한데다, 국세청의 자의적 과세로 손해를 봤으니 물어내라는 주장이다.
이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해 우리 정부에 2억1천650만달러(약 2천8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 "사업장 없는 한국에 세금 낼 필요 없다"…과세 당국과도 충돌
ISDS 소송 사유에도 포함됐지만, 론스타는 한국 내 사업에 부과된 세금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과세 당국과 충돌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에 매각하고 3천195억원의 양도소득세를 원천징수당했는데, 2012년 5월 이 세금을 돌려달라고 국세청에 청구했다.
외환은행의 실소유자가 벨기에에 설립된 자회사(LSF-KEB홀딩스)이고, 2008년 4월 이미 론스타코리아가 철수해 우리나라에 고정사업장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지만, 국세청이 환급을 거부해 결국 ISDS 소송으로 이어졌다.
2010년에도 론스타는 2007년 먼저 처분한 외환은행 지분(13.6%) 관련 1천192억원의 양도소득세에 대해 비슷한 이유로 환급을 주장했지만, 조세심판원은 "LSF-KEB홀딩스가 외환은행 주주로서 투자활동을 했거나 벨기에 소재 사무소에서 영업을 수행했다고 인정할만한 증빙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며 기각했다.
론스타(론스타펀드Ⅲ)가 2004년 벨기에 법인을 내세워 인수했다가 싱가포르투자청 산하 법인에 매각한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 세금 관련 법정 다툼도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역삼세무서는 벨기에 법인을 '도관 회사(실질적 관리권 없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차린 회사)'로 보고 양도소득세 613억원을 부과했지만, 론스타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결국 2012년 1월 대법원으로부터 부과 취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역삼세무서가 불과 한 달 뒤 '한국과 미국 간 이중과세회피·탈세방지 협약'을 근거로 법인세 644억원을 새로 매겼고, 행정소송과 헌법소원까지 거쳐 결국 2016년 12월 론스타의 법인세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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