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거리 타격 능력·미사일 방어 능력·무인기 중점
중북러 위협 이유로 방위력 대폭 강화…동북아 군비경쟁 우려도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이세원 특파원 = 내년 일본의 방위비가 대폭 늘어 사상 최초로 60조원대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대만 해협 긴장 고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을 안보 불안 요인으로 꼽으며 원거리 타격 수단 확보와 미사일 방어체계 확충 등을 골자로 한 방위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2023회계연도(2023.4∼2024.3) 방위비로 작년 대비 3.6% 늘어난 5조5천947억엔(약 55조원)을 재무성에 요구했다고 31일 발표했다.
이 금액은 항목만 있고 예산요구 금액이 제시되지 않은 '사항요구'를 제외한 규모다.
방위성의 사항요구는 예산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금액을 예측하기 어려운 항목이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인데 예년에는 사항요구가 주일미군 경비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지만 이번에는 1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사항요구를 포함해 연말께 확정하는 2023회계연도 방위예산으로 "6조엔대 중반(약 64조원)을 시야에 두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6조엔대 중반이면 2022회계연도(5조4천5억엔) 대비 약 1조엔(약 10조원), 20%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 사거리 1천㎞ 이상 미사일 배치…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방위성에 따르면 사항요구는 ▲ '스탠드오프'(적의 위협 범위에서 벗어난 원거리에서 타격) 능력 ▲ 종합 미사일 방어 능력 ▲ 무인 무기체계에 의한 방어 능력 등을 확보하는 사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스탠드오프 능력 확보를 위해 기존 '12식 지대함 유도탄' 개량 사업이 추진된다.
이 유도탄의 사거리를 현재 200㎞에서 1천㎞ 이상으로 늘리고 지상 발사형은 물론 함정 및 항공기 발사형도 개발, 양산하는 사업이다.
특히, 지상 발사형은 조기 실전 배치를 위한 양산 비용이 예산에 신규 반영됐다.
방위성은 장사정 미사일을 개발해 1천발 이상 보유하고 난세이제도와 규슈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현지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난세이제도는 일본 서남부 규슈 남쪽에서 대만 동쪽까지 뻗어 있는 군도를 지칭하며 오키나와 등이 포함된다.
대만 해협의 유사 사태를 염두에 두고 중국 및 대만과 가까운 지역에 장사정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외딴 섬에 배치하는 도서 방위용 미사일 '고속활공탄' 양산과 음속의 5배(시속 약 6천㎞)가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연구도 신규 사업으로 포함됐다.
빠른 속도로 궤도를 바꿔가며 비행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현재 기술로는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해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데, 일본도 개발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F-15 전투기에 탑재하는 'JASSM'(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사거리 900㎞) 도입은 신규 사업으로, F-35A 스텔스 전투기에 탑재하는 JSM(합동타격미사일·사거리 500㎞) 도입은 계속 사업으로 각각 반영됐다.
이런 원거리 타격 수단은 일본 정부가 보유를 추진하는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에 활용되는 핵심 무기로 꼽힌다.
그러나 공격용으로 쓰일 수 있는 원거리 타격 수단의 보유는 일본 평화헌법에 기초한 '전수방위'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전수방위는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사용하고 실력 행사 방식도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 그치도록 한다는 원칙이다.
◇ 2만t급 신형 이지스함 도입…공격형 무인기 연구개발
방위성은 또한 미사일 방어 능력 강화를 위해 기존 이지스함보다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이 뛰어나고 극초음속활공무기(HGV) 등에도 대응할 수 있는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이하 신형 이지스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신형 이지스함 도입은 2020년 기술적 문제로 사업이 중단된 지상 배치형 미사일 요격 시스템 '이지스 어쇼어'를 대체하는 사업이다.
2023회계연도에는 설계와 엔진 도입 예산이 반영됐다.
신형 이지스함의 배수량은 약 2만t으로 해상자위대 함정 중 최대급이 될 전망이며, 2027년 취역을 목표로 한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아울러 함대공 미사일 'SM-6'와 신형 패트리엇 미사일 'PAC-3MSE', '03식 중거리 대공 유도탄' 등 탄도탄 및 항공기 요격 미사일을 도입하고, 극초음속 무기에 대처하는 연구도 추진하기로 했다.
방위성은 또한 무인 항공기(UAV)·수상정(USV)·잠수정(UUV)·차량(UGV) 등 다양한 무인 무기체계를 조기에 도입해 운용할 방침이다.
방위성은 "무인 자산은 혁신적인 '게임 체인저'인 동시에 인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공중, 수상, 수중 등에서 비대칭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무인 무기체계의 유용성을 설명했다.
방위성은 2023회계연도 방위예산 자료에 소형 공격용 UAV 이미지 사진 게재하면서 '전투용 무인기 등 연구'를 신규 사업으로 제시했다.
기존 경계, 감시, 정보수집 목적의 무인기 말고도 공격형 무인기의 개발 및 양산도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방위성은 우주, 사이버, 전자전 등 새로운 안보 영역에서 비대칭적 우위를 확보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위성을 활용한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고, 사이버 요원을 양성하며, 전자전 능력 및 전자파 관리 기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 일본 방위비 대폭 증액에 동북아 군비 경쟁 우려도
2023회계연도 방위예산은 일본 정부가 연말까지 개정을 추진하는 국가안전보장전략, 방위계획대강, 중기방위력정비계획 등 3대 안보 전략 문서와 맞물려 있다.
특히, 5년 단위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의 첫해 예산이어서 이 계획이 어떻게 개정되느냐에 따라 예산의 규모와 세부 내용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2023회계연도 방위비 요구액에 금액을 제시하지 않은 사항요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방위성 관계자는 사항요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방위력의 내용, 예산의 규모, 재원 등 3가지를 연말을 내다보고 제대로 논의한다고 말했다"며 "사항요구는 방위성 내에서도 논의하지만, 연말까지 (기시다 총리가 언급한) 3가지를 검토한 후 정부 내 제대로 논의해서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은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5년 이내 GDP의 2%로 늘린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일본은 중국, 북한, 러시아 등 주변국의 위협을 방위비 증액의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유사한 사태가 대만 해협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비도 방위력 강화의 명분으로 꼽는다.
그러나 일본의 방위비 대폭 증액은 동북아 군비 경쟁으로 이어져 일본의 안보 불안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본의 2023회계연도 방위비 요구액(약 55조원)은 한국 정부의 내년 국방예산안(57조1천268억원)보다 적지만, 사항요구가 반영된 정부 확정액은 60조원대로 늘어나 한국 국방비를 넘어설 전망이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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