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식 정치개혁, 따르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로 인식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소련 최후의 영도자 고르바초프, 병으로 별세."
중국 관영 통신 신화사가 30일(현지시간) 보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부고 기사의 제목이다. 객관적이고 건조한 표현이지만 보기에 따라선 고인을 향한 중국 주류 사회의 냉정한 인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보인다.
신화를 비롯한 중국 관영 매체들은 부고 기사에서 고인의 행적에 대한 가치 판단을 자제한 채 이력과 장례 일정 등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냉전 해체의 한 주역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역사적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찬사나 긍정적 평가는 31일 현재 중국 매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서방 매체들의 보도 톤과는 분명히 온도 차가 존재한다.
아직은 매체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난무하는 상황도 아니지만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마지막 총서기' 등과 같은 기사의 표현은 고인의 집권기에 소련이 붕괴한 측면을 은연중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1960년대 국경 충돌과 공산 진영에서의 주도권 다툼으로 알력이 심했던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고르비 집권기에 해빙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고르바초프가 중·러 관계에도 긍정적 족적을 남긴 측면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국을 이끌어가는 공산당 입장에서는 고르바초프가 상징하는 과감한 정치 개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줄곧 강했고, 그것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을 계기로 중국이 정치적 민주화와 철저히 선을 그으면서 공고해진 측면이 있다.
중국도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 2위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지만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고르바초프식 정치 개혁은 중국이 피해야 할 '반면교사'로 보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1991년 12월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 몇시간 전 신화통신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와 글라스노스트(언로 개방), 정치적 다원주의는 정치적 혼란과 종족분쟁, 경제 위기만을 불러왔다"고 평한 바 있다.
'정치적 혼란'과 '종족 분쟁' 표현은 공산당 일당 체제를 절대시하고, 다민족국가로서 소수민족 문제에 고도로 민감한 중국이 고르바초프에 대해 갖는 알레르기 반응의 본질을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정치적 자유화 측면에서 개혁·개방 이래 가장 보수적인 중국 최고 지도자로 평가받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아래 그런 부정적 인식은 중국 공산당 내부와 주류 사회 안에서 더욱 공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의 2013년 2월 기사를 비롯한 과거의 일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대외 비공개회의 석상에서 고르바초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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