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부대변인 주장…"크렘린궁 부실장이 투표 준비 감독"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러시아가 현재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뿐 아니라 북동부 하르키우 일부 지역에서도 분리·독립과 러시아 병합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하고 있다고 미 국무부 고위관리가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 개전 이후 하르키우의 상당 지역을 점령했었으나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밀려나 현재는 일부 지역만 통제하고 있다.
지난 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 베단트 파텔은 언론 브리핑에서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지역 점령과 러시아 병합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작된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하고 있으며 투표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동부 돈바스 지역은 물론 일부 지역만을 통제하고 있는 하르키우에서도 주민투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는 러시아군의 전면 공세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격퇴되고 교전 중심지가 남동부 지역으로 옮겨간 뒤에도 지속적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현지 당국에 따르면 지난 30일에도 여러 발의 미사일이 도심 인근에 떨어져 최소 5명이 숨졌다.
러시아는 점령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지 학교에 러시아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현지 주민들에 러시아 여권 신청을 독려하는 한편, 핸드폰과 인터넷을 러시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있다.
파텔 대변인은 몇 주 내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주민투표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정체성, 역사를 공격하기 위한 러시아의 각본"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러시아로 편입되길 바란다는 크렘린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주민투표를 위한 기반 작업은 크렘린궁 행정실(대통령 비서실) 제1부실장 세르게이 키리옌코가 감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내 정치를 담당하는 그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들을 러시아로 병합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NYT는 해석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도 주민투표 방식을 동원했다.
당시 러시아군이 크림 주요 지역을 장악한 가운데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주민의 96% 이상이 러시아 편입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이 같은 투표 결과를 토대로 크림반도를 러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병합했다.
이후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의 친러주의자들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하겠다며 무장투쟁을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진압에 나서면서 8년 동안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러시아는 지난 2월 '돈바스 해방'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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