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 무색'…점점 두 쪽으로 쪼개지는 미국

입력 2022-09-03 22:06  

'연방제 무색'…점점 두 쪽으로 쪼개지는 미국
낙태권·총기·방역 등 여러 문제서 정치색깔 뚜렷
주정부 영향력과 정책 편차 커지면서 美 이념 양극화↑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연방제인 미국이 주별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두 쪽으로 갈라지고 있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가 이름에서 나타나듯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은 50개 주(州)의 연합체로, 주정부의 독자적인 권한을 인정하되 중앙정부인 연방정부가 전국적 차원에서 정책과 법률을 만들어 시행하면서 안정과 통합을 꾀한다.
하지만 최근 각 주의 정책마다 정치적 색깔이 뚜렷해지고 주정부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미국이라는 국가가 주별로 극명하게 나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일례로 대표적으로 상반된 두 지역인 공화당 텃밭 미시시피주와 진보의 선두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낙태권 이슈를 두고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미시시피주는 미국 여성의 낙태권 역사에서 시계를 거꾸로 되돌린 장본인으로 통한다.
2018년 미시시피주가 임신 15주 이후 대부분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자 현지 낙태시술소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전을 벌였고 사건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이는 결국 지난 6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로 귀결됐고, 이후 미국에서 각 주의 방침에 따라 낙태 합법화 여부를 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와 반대로 6월 캘리포니아주의 개빈 뉴섬 주지사(민주당)는 주에서 낙태 시술을 받거나 도와준 사람을 낙태가 금지된 다른 주에서 제기한 소송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안을 마련하며 대척점에 섰다.
이 밖에도 두 주는 다른 분야에서도 정반대 성향을 보인다.
미시시피주는 '비판적 인종 이론'(CRT) 교육이나 트랜스젠더 학생의 교내 스포츠 참여 등을 금지한 반면, 캘리포니아는 최근 생식권과 성소수자 권리를 제한하는 주에서 나오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액공제를 주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는 비단 두 주의 문제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마스크 착용과 백신 의무화 등 방역 조치에 대한 접근법에서 공화당 주와 민주당 주의 차이를 더 극명하게 드러냈다.
총기 문제와 관련해서도 주별로 대응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었다. 올해 10개 주에서 총기 구매·소지와 관련된 규제를 새로 도입했으나 주지사나 의회 등을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는 규제 풀기에 나섰다.
크리스 워쇼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부교수와 데빈 코피 매사추세츠공과대 부교수가 1930대부터 지난해까지 190개 정책을 분석한 결과 각주의 '좌우'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각 주는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면서도 주별 정책 성향과 투표 성향이 점점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또 진보-보수 스펙트럼으로 놓고 보면 각주의 정책 성향이 점점 벌어져 좌우 최극단끼리의 편차가 크게 늘어났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추세를 보면 캘리포니아의 경우 정책이 점점 진보적으로 변했고 투표 성향도 민주당으로 기울어졌다. 반대로 같은 기간 미시시피주는 투표 성향이 점점 우측으로 이동하면서 정책도 보수 색채가 뚜렷해졌다.
워쇼 부교수는 "주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다르다"고 분석했다.

또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인의 삶에 중요한 정책이 주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주정부의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통적으로 연방정부 책임으로 여겨지던 이민자 취급 문제에서도 이제 주정부가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여러 법을 통해 사실상 불법 이민자를 합법화했고, 이민 상태와 상관없이 모든 저소득층 성인에게 의료비 지원정책인 '메디케이드'를 적용하기 시작한 첫 번째 주가 됐다.
대표적 보수지역 텍사스주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이민 유입을 줄이고자 주 경찰이 불법 이민자를 적발하면 버스에 태워 국경으로 다시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다.
통상 불법 이민자가 적발되면 주당국은 연방정부로 이송했지만 이젠 주정부에서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연방제는 호주와 캐나다, 독일 등 다른 곳에서도 채택하고 있지만 특히 미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주정부와 연방정부 사이에 주도권이 왔다 갔다 하는 양상을 보였다.
미 메릴랜드대 공공정책학부 돈 케틀 명예 교수는 "캐나다와 호주 같은 국가는 연방정부가 누리는 권한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지만 미국에서는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안정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는 공화당 주들이 일부 연방 정책에 반기를 들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땐 캘리포니아가 연방정부에 대항해 자체 정책을 만드는 등 '저항'의 중심지가 되면서 주-연방의 대립 관계는 한층 선명해지는 양상을 띠었다.
주별로 다양한 정책이 서로에게 일종의 '참고서' 역할을 해 최선의 정책을 찾기 위한 거울이 된다면 그 비용은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제이컵 그럼바크 워싱턴대 교수는 보통 주정부가 자신과 같은 당이 장악한 주에서 입맛에 맞는 정책만 가져오면서 민생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편향적인 정치 성향만 더 뚜렷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도 주정부에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되고 특정 당이 주지사와 양원을 전부 장악해 제동장치가 사라진 양당의 양극화 현상이 계속되면서 미국 분열 상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it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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