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 되풀이' 우크라전이 보여줘"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 영화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가 러시아의 전신인 소비에트연방(소련)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로즈니차 감독이 제79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자신의 신작 다큐멘터리 '키이우 재판' 상영에 앞서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로즈니차 감독은 "역사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고 하지 않을 때 역사는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을 때 이내 우리는 80년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우리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는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로즈니차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1946년 1월 소련에서 열린 전범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키이우 재판' 혹은 '키이우 뉘른베르크'로 알려진 이 재판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나치와 부역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최초의 재판 중 하나였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아카이브 영상을 활용해 재판 당시 피고인들의 진술과 목격자의 증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생존자들의 진술을 포함한 주요 장면들을 재구성했다.
로즈니차 감독은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이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군과 러시아 정치인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모든 전쟁 범죄에 대해 재판해야 한다"면서 "또 소련이 1917년부터 해체될 때까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재판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소련에는 뉘른베르크 재판과 같은 재판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로즈니차 감독은 2013∼2014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마이단 광장에서 벌어진 친서방 정권교체 혁명인 유로마이단을 다룬 다큐멘터리 '마이단'을 비롯해 러시아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는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영화아카데미(EFA)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와 연대한다"고만 밝히자 공개서한을 내고 "EFA가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러시아의) 야만성을 비난하는 데 실패했다"며 EFA를 탈퇴했다.
이후 EFA는 유럽영화상에서 러시아 영화를 제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친구이자 동료인 많은 러시아 감독들은 이 미친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우리처럼 그들도 이 침략의 희생자이다. 국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행동으로 판단하라"고 촉구하며 이런 결정에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영화 아카데미는 로즈니차 감독이 러시아 영화 거부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회원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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