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매칭 효율성 떨어져 빈 일자리 급증…경기 논란까지
연준 "금리 올려도 빈일자리만 감소, 실업률 크게 안높아질 것"
서머스·블랑샤르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 없다" 반박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일자리 매칭(구인·구직 연결) 효율성이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췄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 오삼일 차장은 5일 '베버리지 곡선을 통한 노동시장 평가:미국과 비교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한국과 미국은 팬데믹 이후 베버리지 곡선 움직임이 차별화됐는데, 이는 노동시장 매칭 효율성에서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버리지 곡선은 실업률(노동 공급·X축)과 빈 일자리율(노동 수요·Y축)의 상관관계를 반영한 그래프로, 일반적으로 실업률과 빈 일자리율은 반비례 관계이기 때문에 우하향하는 곡선의 형태로 나타난다.
경기가 좋으면 빈 일자리가 늘어나는 대신 실업률은 떨어지고, 반대로 경기가 나쁠 때 실업률은 높아지지만 빈 일자리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베버리지 곡선을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나눠보니, 미국에서는 뚜렷하게 베버리지 곡선 자체가 그래프 공간의 오른쪽(바깥쪽)으로 밀려났다.
베버리지 곡선이 통째로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은 전반적으로 실업률과 빈 일자리율이 동시에 높아졌다는 뜻으로, '노동시장의 매칭 효율성 저하'라는 구조적 변화 때문이라는 게 오 차장의 설명이다.
일하고 싶어도 못 하는 실업자, 빈 일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채울 수 없는 기업이 함께 늘어 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 노동시장의 매칭 효율성이 오히려 개선되면서 팬데믹 전보다 베버리지 곡선 자체가 왼쪽(안쪽)으로 움직였다.
오 차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하면서 노동 공급이 빠르게 회복됐다"며 "그러나 미국은 자발적 퇴직 증가, 이민 감소, 대규모 재정지원(실업급여 확대) 등의 영향으로 노동 공급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참가율, 기업의 구인 성공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웃돌고 있지만, 미국은 두 지표가 모두 팬데믹 이전보다 낮은 상태다.
오 차장은 베버리지 곡선 이동의 배경인 한국의 풍부한 노동 공급과 구인 성공률 상승이 지난 2년간 임금 상승 압력을 줄이는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빈 일자리가 전례 없이 많이 쌓이면서 경기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빈 일자리가 크게 늘지 않아 경기 논쟁의 여지도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금리 인상으로 노동 수요가 줄더라도, 현재 워낙 많은 빈 일자리만 감소하면서 충격을 흡수할 것이기 때문에 실업률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 미국 재무부 장관 래리 서머스나 전 IMF(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의 경제학자들은 "실업률 상승 없이 빈 일자리만 감소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 차장은 "국내 노동시장의 경우 정점을 지나면서 빈 일자리가 줄고, 실업률이 자연실업률(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는 균형 수준의 실업률) 수준으로 점차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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