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에 총체적 난국…트러스 감세로 영국 경제 되살릴까

입력 2022-09-05 21:14   수정 2022-09-06 16:30

에너지 위기에 총체적 난국…트러스 감세로 영국 경제 되살릴까
물가 급등, 파운드화 하락…연쇄 파업으로 '불만의 겨울' 재현 우려
가계 에너지 대책부터 내놓을 듯…우크라·브렉시트 대응 방향 유지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내정자는 넘겨받은 과제가 무거워서 당선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어 보인다.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가 남겨둔 영국의 상황은 파업이 계속되고 민심이 흉흉했던 1970년대 후반 '불만의 겨울'에 비유될 정도다.
트러스 내정자는 감세로 경기를 부양하고 성장을 끌어내는 한편, 가계 에너지 지원 방안을 내놓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1천억파운드(157조6천억원) 상당의 감세·가계 지원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나랏빚 확대와 인플레이션 자극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관련해선 기존 대응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가계 에너지 요금 급등 대응이 '발등의 불'
트러스 내정자는 며칠 내 가계 에너지 요금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가계 표준가구 에너지 요금은 다음 달 연 3천549파운드(558만원)로 80% 뛸 예정이고 내년 4월엔 연 6천616파운드(1천40만원) 전망까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서 국제 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영국은 발전에서 가스 의존도가 45%에 달할 정도로 높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
지금 오름세라면 중산층조차도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경고가 헛되이 들리지 않는다.
트러스 내정자는 선거운동 중에 즉시 돕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약속을 하진 않았다.
이날 언론에선 에너지 요금 동결안이 검토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편, 겨울 정전사태 우려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배급제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파운드화 가치 하락·물가 급등…감세 통한 경제성장
트러스 내정자의 대표 공약은 감세를 통한 경제 성장이다.
경쟁자인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이 올린 세율을 도로 낮추고 앞으로 계획도 취소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공지출은 줄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낵 전 장관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빈 곳간을 채우고 국민보건서비스(NHS) 지원을 늘리기 위해 법인세율 19%에서 25%로 인상, 소득세 격인 국민보험(NI) 분담금 비율을 1.25%포인트 인상, 에너지 요금에 친환경 에너지세 부과를 발표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시행 중이다.
트러스 내정자는 지난 20년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자신은 급진적인 변화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러스 내정자의 경제정책 '트러스노믹스'는 결국 대규모 차입으로 이어져서 가뜩이나 높은 물가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은 물가 상승률이 7월에 이미 10%가 넘었고 내년 초에는 20%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4분기부터 경기침체 진입을 예고하면서도 금리인상을 계속하고 있다.
실질임금 하락으로 철도, 우편 등 공공부문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잇따라서 사회 기반 서비스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고 있다.
파운드화 가치는 내년 중반엔 달러화와 1대 1 가까이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이다.
트러스 내각 재무부 장관으로 유력한 쿼지 콰텡 산업부 장관은 FT 인터뷰에서 "영국은 더 차입할 여력이 있다"면서도 "재정을 책임감 있게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한편, 트러스 내정자는 전날 BBC 인터뷰에서 감세가 세금을 많이 내는 고소득자에게 좋은 일이라는 지적에 관해서 "모든 것을 재분배의 렌즈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며 "나는 경제를 성장시키려는 것이고, 이는 모두에게 혜택이 된다"라고 주장했다.
◇우크라·브렉시트 대응 유지…국방비 GDP 3%로 확대
트러스 내정자는 외무부 장관 시절 우크라이나와 브렉시트 관련 대응 방침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러스 내정자는 국방비를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3%로 확대하고 우크라이나 재건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후 첫 통화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브렉시트 관련 북아일랜드 협약 문제로 유럽연합(EU)와 대치하는 상황을 풀기 위해 몇 주 내 미국을 방문해 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트러스 내정자는 북아일랜드 협약 파기 카드까지 꺼내서 EU를 압박했으나 아일랜드계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아일랜드섬 평화에 기반이 된 벨파스트 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 혜택을 보호하는 것이 관심사라면서 대화를 촉구했다.
◇낮은 기대…당 단합시켜 국정 동력 확보 필요
난제를 앞에 두고 있지만 트러스 내정자에겐 이를 풀어낼 동력이 큰 상황은 아니다.
보수당원의 선택을 받았지만 이는 전체 유권자의 약 0.3%에 불과하다.



온라인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달 약 3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트러스 내정자가 좋은 총리가 될 것이라는 답변이 12%에 그쳤다.
심지어 선거운동 기간엔 등 떠밀려 나간 존슨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트러스 내정자를 포함한 두 후보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향후 복귀 의향이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선 웃을 일이 아니다.
존슨 총리는 자신의 결단으로 시행된 2019년 조기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기반을 다녔지만 트러스 내정자 입장에선 조기총선은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 존슨 총리의 파티게이트 이후 보수당의 지지율은 노동당에 뒤진다.
특히 문제는 그가 보수당 원내 경선에서 2위에 그쳤고 당이 상당히 분열돼있다는 점이다.
수낵 전 장관을 지지한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내각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트러스 내정자에겐 부담이 된다.
대신 경선에 참여했던 경륜이 짧은 의원들이 지지를 대가로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보도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의회에선 이미 불신임 요청 서한에 관한 소문이 얼마나 빨리 돌지를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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