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디캐프리오 호소에도…소금사막된 중동 최대호수

입력 2022-09-12 08:02   수정 2022-09-13 16:29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디캐프리오 호소에도…소금사막된 중동 최대호수
가뭄에 바짝 마른 이란 우르미아 호수…수변 항구 도시 관광 산업 타격
'소금 폭풍' 농작물 말라 죽어…최대 철새도래지 흔적만 남아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우르미아[이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호수의 바닥, 정확히 말하자면 '호수였다'고 하는 곳에 발을 내딛자 바싹 마른 들풀이 바스스 부서졌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중동 최대 호수는 이미 황량한 소금 사막으로 변해있었다.
이란인들의 여름 휴양지, 중동 최대 철새도래지라는 명성도 이미 역사 속 한 장면이 된듯했다.
4일(현지시간) 찾은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 우르미아호 수변 도시 샤라프카네는 인적이 뜸해 '유령 도시' 같았다.
마을 초입에 설치된 녹슨 모터보트 모양의 이정표가 한때 이곳이 유명한 수상 레저 관광지였음을 희미하게 증명했다.

사용하지 않은 지 족히 10년은 돼 보이는 부둣가는 생뚱맞기까지 했다. 모래사막 한가운데 배를 대는 접안 시설이라니….
나무로 만든 이 시설은 풍화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성인 남성 두 명의 무게를 겨우 버텼다. 기둥 높이로 보아 이곳의 수심이 과거 2m 가까이 됐음을 알 수 있었다.
샤라프카네 주민 나세르씨는 "예전에 이 도시는 꽤 유명한 관광 도시였다"면서 "많은 이란인이 수영하고 수상 레포츠를 즐겼다"고 전했다.
나세르 씨의 말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이란인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장난 섞인 허무맹랑한 말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곤 하는데 그런 농담일까 싶기도 했다.
호수 바닥에는 오래전 사용했던 관광용 여객선 두 척이 덩그러니 남았다. 하얀색 선박 표면은 녹슬어 붉게 변했다.
그중 하나는 50명은 거뜬히 태울 정도로 컸다. 조타실 천장에 달린 나무 간판에는 '노아'라고 쓰여있었다.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의 그 노아였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노아'라는 배의 이름이 주는 역설로 이곳의 갈증은 최대치로 증폭됐다.

우르미아 호수는 중동 최대이자 세계 6번째로 넓은 소금호수였다. 1990년대 표면적이 한때 5천400㎢로 서울의 9배 가까이였지만 가뭄으로 마르면서 2021년엔 2천500㎢로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있다.
중동에서 가장 크다지만 이란의 정치적 특성으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다가 몇 년 전 잠시 관심을 끈 적 있었다.
환경 운동에 적극적인 세계적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자신의 SNS에 이 호수를 보호하자고 호소하면서다.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폐허가 된 접안 시설이 이란 북서부 말라버린 우르미아 호수에 남아있다. 한때 중동 최대의 소금호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20년 전의 5%밖에 물이 남지 않았다. 기후변화와 댐 건설 탓이다"라고 적었다.
갑작스러운 오토바이 굉음이 호수의 적막을 깼다. 몇 안 되는 관광객이 제트 스키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호수 바닥을 질주하고 있었다. 새롭다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한 관광 상품이었다.
하얀색 철새 수십 마리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해 하늘을 빙빙 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한때 많은 철새의 고향이었음을 짐작게 하는 수변 공원의 철새 조형물로 꾸며진 분수는 이제 작동하지 않았다.
2014년 수량이 90% 넘게 줄기도 했으나, 다행히 이후 몇 년간 강수로 일정 부분 수위를 회복했다.
이란 당국은 이 호수가 사라지는 이유를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보고 있다.
호수의 고갈은 일대 도시산업에도 타격을 줬다.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했던 수변 도시의 호텔과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호수에서 약 80㎞ 떨어진 도시 타브리즈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에르판씨는 "관광객이 예전과 비교해 급격히 줄었다"면서 "5년 전만 해도 공항에 버스 4∼5대가 줄지어 관광객을 실어날랐지만, 지금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타브리즈는 시라즈, 이스파한에 버금가는 관광지였지만, 요즘은 활기를 많이 잃었다"며 "관광뿐만 아니라 물이 부족해지면서 농업도 많이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주변의 생명줄이었던 호수는 이제 농작물을 말라 죽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물이 마른 뒤 호수 바닥에 남은 소금은 바람에 쉽게 날렸다. 강한 바람이 불 때는 소금과 먼지가 섞이면서 '소금 폭풍'을 만들었다.
소금을 뒤집어쓴 농작물은 수분을 빼앗겨 죽고 농경지에도 염분이 섞여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한다.
우르미아 호수 주변에서 복숭아, 포도, 오이, 토마토를 많이 경작했었다고 한다.
샤라프카네 인근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메흐디씨는 "소금 폭풍이 한번 불면 사람도 바깥 활동이 어렵다"면서 "가게 문을 닫고 창문도 열지 못하고 폭풍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샤라프카네에서 약 40㎞ 떨어진 호수 중심부에는 물이 남아 있었다.
줄어든 수량은 염분 농도를 극도로 높였다. 잠시 손을 담근 것만으로도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중심부의 수변은 하얀색이었는데 소금이 쌓였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호숫물과 소금은 거대한 염전을 보는듯했다.

호수를 동서를 잇는 유일한 다리 주변 '소금 해변'에는 짠 냄새가 진동했다.
일부 주민은 호숫물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한 관광객은 "이 호숫물이 피부 질환에 효능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처음에는 따가운데 조금 참다 보면 금방 적응이 된다"며 웃었다.
몇 안 되는 관광객들은 하얀 소금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해변 주변 상인들은 호수의 소금을 자루에 담아 팔았다.
이곳에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동 지역 수자원 고갈은 이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라크, 요르단 등 상당수 국가에서 물 부족 문제는 주요 현안으로 꼽힌다.
세계자원연구소(WRI)는 지속적인 가뭄과 더불어 높은 기온, 기후 변화, 부실한 물관리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중동 지역 호수가 말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출범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정부는 우르미아 호수 복원을 주요 현안으로 정하고 물길 정비, 물 터널 건설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광활한 소금 사막이 된 호수를 마주하면서 인간의 '대책'이라는 것이 자연의 거대한 변화를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logo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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