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과학회 "90%가 귀 관련 질환과 연관돼…잘못된 상식에 치료 늦어져"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얼굴 한쪽의 눈이 잘 안 감기거나 입이 삐뚤어지는 등의 안면마비는 매우 갑작스러우면서도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다.
안면마비가 생겼을 때 일반인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는 편이다. 찬 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찬 바람을 많이 쐰 탓에 이런 증상이 발생했다고 짐작하며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뇌졸중과 같은 위험 질환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경우다.
하지만, 두 가지 반응 모두 원칙적으로 정답이 아니라는 게 전문 학회의 공식 견해다.
8일 대한이(耳)과학회(회장 구자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안면마비 증상을 치료하는 의료 수준이 매우 높은데도 많은 환자가 안면마비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어 제대로 된 치료가 늦어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9만∼10만명 정도의 안면마비 환자가 꾸준히 발생한다.
안면마비 증상의 67%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또는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얼굴이나 귀 주변에 감염돼 발생하는 '벨마비'와 '람세이 헌트 증후군'이 원인이다. 이어 귀 주변을 포함한 머리 부위 외상(13%), 귀나 침샘의 종양이나 염증(10%)도 원인으로 꼽힌다. 나머지 10%가 선천성, 의인성(의학적 처치에 따른 증상), 중추성(뇌 신경계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안면마비의 90%가량이 귀 안이나 귀 주변의 질환과 연관된 셈이다.
따라서 안면마비 증상이 생겼을 때는 우선 귀 건강과 관련된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게 이과학회의 지적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대부분에서 안면마비 클리닉은 이비인후과 내에서 운영되고 있다.
안면마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벨마비의 경우 정상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발병 2∼3일 안에 고농도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벨마비는 귀 안에 위치한 안면신경에 부종과 염증이 생겨 발생하는데, 고농도 스테로이드가 빨리 효과적으로 부종과 염증을 줄여 줄 수 있다.
조기 스테로이드 처방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신경 손상 후 생기는 '왈러변성'(Wallerian degeneration)이라는 현상 때문이다.
이종대 순천향의대 이비인후과 교수는 "왈러변성은 비교적 심한 안면마비 환자에게 발생하는데 안면마비가 생기고 약 2~3일부터 시작해 2~3주까지는 비가역적인 안면신경의 변성이 진행되고 결국 영구적 안면 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왈러변성에 의한 만성적 안면장애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고농도 스테로이드 처방과 항바이러스제 투여, 안면신경 감압술 등의 치료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이런 검토와 치료가 종합적으로 이뤄지려면 안면마비 초기에 적절한 이비인후과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또한 안면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만성 중이염, 청신경 종양, 안면신경초종, 이하선 종양 등도 이비인후과의 주요 진료 분야에 속한다.
구자원 대한이과학회 회장(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은 "중이염과 청신경 종양 등의 질환은 평소에 특별한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혹은 서서히 안면마비만 일으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벨마비 등으로 오인될 수 있다"면서 "부적절한 치료를 피하려면 안면마비 증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정확한 감별진단을 받는 등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bi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