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위축 탓 유가 하락" vs "수급 불안에 유가 상승" 전망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최근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하반기 실적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고유가와 정제마진 초강세에 힘입어 정유사들은 올해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냈지만, 하반기 들어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출렁이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올해 겨울 유럽이 최악의 전력난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정유사들이 하반기에도 비교적 견조할 실적을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국제유가 따라 정제마진도 '출렁'…정유사 하반기 수익 악화 불가피
9일 증권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이달 6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8.13달러를 기록했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이를 휘발유·경유 등으로 만들어 파는데 정제마진이란 최종 석유제품의 가격에서 원유를 포함한 원료비를 뺀 마진을 말한다.
정제마진은 정유사 수익의 핵심 지표로, 보통 4∼5달러를 이익의 마지노선으로 본다. 정제마진이 4∼5달러 이상이면 수익, 그 이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원유 수급난이 심화되면서 올해 1월 배럴당 평균 6.01달러였던 정제마진은 6월에는 24.51달러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6월을 정점으로 정제마진은 급락해 7월과 8월에 각각 9.07달러, 9.12달러로 떨어졌다.
일간 기준으로 이달 1일 정제마진은 3.97달러까지 급락했다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정제마진이 이처럼 크게 출렁이는 것은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동산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 3월 배럴당 127.9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9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 10월 인도분 아랍 경질유 OSP 하락…에너지 수급난은 지속 전망
하반기 국제 유가 전망도 안갯속이다.
상승 요인과 하락 요인이 맞물리며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하반기 들어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이 한풀 꺾인 것은 경기침체 우려에 더해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 여파로 글로벌 석유제품 수요가 위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원유를 판매할 때 국제 원유 가격에 붙이는 프리미엄인 OSP(Official Selling Price)가 최근 하락한 것도 유가 안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0월 인도분 아랍경질유(ARL) OSP는 5.85달러로 8월(9.3달러)과 9월(9.8달러)보다 큰 폭으로 내렸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중동 산유국들이 여름철 '냉방 시즌'에 맞춰 비축해 뒀던 원유 물량을 수출로 밀어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유가 하방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다시금 들썩거릴 조짐도 보인다.
최근 러시아가 자국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도입에 동참하는 국가에는 에너지를 일절 수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면서 수급 불안이 가중될 우려가 커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원유 가격 상한제는 주요 원유 구매국들이 합동으로 러시아산 석유 가격을 통제해 러시아의 수익을 제한하겠다는 구상으로,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은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러시아가 실제로 가스·원유 수출을 금지하며 보복에 나설 경우 글로벌 에너지 수급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에너지 가격이 다시 요동칠 우려가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겨울철 유럽의 에너지 대란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등유·경유 마진도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대폭 축소된 유럽에서 대체재인 경유와 등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의 불안정한 에너지 공급 상황은 탈탄소 전환과 에너지 안보가 얽혀서 수년간 내재돼 온 문제인 만큼 각 정부의 단기적인 시장 개입만으로는 해소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근본적인 수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유가가 꾸준히 하향 안정세를 보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올해 상반기 국내 정유 4사는 12조원이 넘는 흑자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실적만으로도 이미 역대 연간 기준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뛰어넘은 전례 없는 호황으로,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흑자 규모가 3배 이상으로 커졌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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