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여왕 서거] 찰스3세, 정치적 견해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군주 될 듯

입력 2022-09-10 07:30   수정 2022-09-10 15:13

[英여왕 서거] 찰스3세, 정치적 견해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군주 될 듯
왕세자 시절 각료·의원들에 보낸 '검은거미 메모' 논란도
선왕 수년 중단했던 해외순방 재개 전망…종교에는 열린 자세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69년 이상 왕세자로 있다 마침내 왕위에 오른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선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는 달리 때로는 정치적 의견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군주가 될 것이라고 영국 언론매체들이 전망했다.
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이후 더타임스, 텔레그래프, 스카이뉴스 등 영국 매체들은 새 국왕 찰스 3세가 어떤 국왕이 될 것인지에 관한 보도를 쏟아냈다.
평소 자신의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선왕과는 달리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기후변화 대응, 환경 오염 대처 등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자선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지난 2004~2005년 농업, 유전자 변형, 지구온난화, 사회적 소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편지와 메모를 정부 각료와 의원들에게 보낸 사실이 몇 년 뒤 언론 보도로 밝혀져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의 글씨 모양을 빗대어 '검은 거미 메모' 사건으로 언론이 이름 붙인 이 일로 인해 그는 '간섭하는 왕자'(meddling prince)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당연히 국왕의 지위가 주는 무게감은 왕세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처신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찰스 3세는 지난 수십년 동안 자신이 옹호하는 가치를 위해서는 싸움도 마다치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수십년간 그를 지켜보고 기록해온 전기작가 페니 주너는 이 신문에 "내 짐작으로는 찰스 3세가 명백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간섭하지는 않겠지만 정당하게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서 선왕보다는 훨씬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총리는 정기적으로 국왕을 만나 국정 현안에 관해 보고한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또 다른 전기 작가인 조너선 덤블비도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총리와 만나는 자리에서 국정 현안에 관한 자기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전하면서 "이 같은 방식은 헌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잠재적 폭발성을 지닌다"고 밝혔다.
그는 왕궁 개방을 더욱 확대하고 필요하면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허락해 왕실 재정 수지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궁정 관리들에게 표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텔레그래프는 찰스 3세가 국가 또는 왕실 소유의 수많은 궁전과 거주시설을 모두 왕실이 차지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으며 선왕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을 국가에 돌려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찰스 3세는 특권을 누리는 왕실 구성원의 범위도 대폭 축소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쳐 왔다. 지난 2012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 때 왕궁 발코니에서 인사하는 왕족을 자신의 직계로 제한한 것이나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의 왕족 특권을 박탈한 데에는 찰스 3세의 강력한 의도가 작용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대외적으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2015년 이후 중단한 해외순방, 특히 영연방 국가들에 대한 국빈방문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일부 영연방 국가들은 공화국으로 전환하자는 내부 논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찰스 3세의 즉위 이후 이런 움직임이 가속할 수도 있다.
찰스 3세의 한 친구는 "찰스 3세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국가원수로 모신다는 것이 조금은 우스꽝스럽다는 견해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 영연방국가의 공화국화 움직임이 가시화하더라도 그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논란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국왕은 국교회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찰스 3세는 모든 신앙을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 선왕은 즉위 이후 한번도 하지 않았던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더 타임스는 심지어 찰스 3세가 과거 자신의 즉위식을 다종교 의식으로 치르기를 원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전통에서 완만하게 변화하는 것이 될지, 혹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 양상을 띠게 될지가 그의 재임 기간이 어떤 모습일지 추측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why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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