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키우주 철수 뒤 온라인에 불만 봇물터지듯
모스크바 축제에 더 짜증…정부·군 불신까지 경고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러시아군이 최근 우크라이나전에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간 전쟁의 최대 지지층이던 러시아 내 매파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밀려 하르키우주에서 철수를 결단한 이날 강경파 블로거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요충지 바라클리아, 이지움을 비우면서 '철수'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배치된 자국군 부대에 '재편성'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상황이 불리하게 비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기색이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미 러시아 군사 블로거를 중심으로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크렘린궁은 자국 내에서 방송을 통제하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서방 소셜미디어 접근을 차단했지만 텔레그램은 아직 사용이 가능해 전쟁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공론의 장' 역할을 한다.
한 친러시아 블로거는 텔레그램에서 현재 상황에 우려를 드러내며 러시아가 지금 축하연을 즐길 때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십억 루블짜리 파티를 하다니. 어디 잘못 된 게 아니냐? 참담한 실패 앞에 그럴 때가 아니다."
이날은 모스크바가 도시 건립 875주년을 맞는 날로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해 축하 분위기를 띄운 날이다.
이 블로거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충분한 야간투시경이나 드론, 응급키트 없이 싸우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이 이지움을 되찾고 동북부 지역에서 빠르게 진격해 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황 분석은 더 나아가 러시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도 확대됐다.
텔레그램에서 230만 팔로워를 가진 블로거 유리 포도랴카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실패를 계속 축소하면 러시아인은 자국 국방부와 정부 전체를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 친러시아 블로거인 막심 포민은 이번 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 공세에 저항할 시도조차 안 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한 지휘부를 징벌할 때"라고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일부 블로거는 자국에 부정적인 소식을 감추려는 러시아 국방부보다 더 상세하고 정확한 전쟁 상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동북부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가능성을 처음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도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이었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일부 러시아 블로거는 우크라이나군이 바라클리아 인근에서 반격을 준비 중이지만 러시아군은 방어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며 당국의 주장을 반박했다.
러시아 독립 인터넷매체인 메두자에서 전쟁을 해설하는 드미트리 쿠즈네츠는 "매파 대다수가 충격받은 상태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며 "그들 대부분이 진심으로 화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당국이 이따금 비판을 쏟아내는 블로거의 존재를 눈감아주는 이유는 매파적인 제국주의 세계관을 지닌 이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친러시아 메시지를 쏟아내 우군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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