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러시아돈 흘러들어갔다" 블링컨 발언에 이탈리아 '발칵'

입력 2022-09-14 19:03  

"유럽에 러시아돈 흘러들어갔다" 블링컨 발언에 이탈리아 '발칵'
총선 앞두고 파장…러 밀착 우파 정치인들에 의혹의 눈길
'친푸틴' 살비니 "러시아에서 한푼도 받은 적 없어"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러시아의 돈이 유럽의 정당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으로 이탈리아가 벌집을 들쑤신 듯 떠들썩하다.
미 CNN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2014년부터 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 20여 개국의 정당과 관료, 정치인들에게 비밀리에 3억 달러(약 4천172억원) 이상을 송금한 사실이 정보국 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해당 국가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 막대한 자금이 러시아에 호의적인 정책과 정당을 지지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가 다음 날인 14일 '폭탄 발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블링컨 장관의 발언은 조기 총선을 불과 11일 앞둔 이탈리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5일 치러지는 조기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탈리아 우파 연합은 지지율 46.6%로 중도 좌파 연합(27.2%)을 20%포인트 가까이 크게 앞서며 이변이 없는 한 집권이 확실시되고 있다.
우파 연합은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l),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이 대표인 동맹(Lega),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주도하는 전진이탈리아(FI) 등 세 정당이 중심이다.
멜로니 대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살비니 상원의원과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대표적인 '친러시아' 인사인 탓에 유럽연합(EU)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의 극우 집권은 유럽의 단일 대오에도 악재로 받아들여진다.
살비니 상원의원은 2014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붉은 광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찬양하는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는 등 이탈리아 정계에서 대표적인 친푸틴 인사로 꼽힌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역시 푸틴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탈리아 정계가 블링컨 장관의 발언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두 정치인이 그동안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를 의심받아왔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푸틴 대통령을 찬양해온 살비니 상원의원,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단순한 친분을 넘어 러시아로부터 자금을 후원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총선 판세가 뒤집힐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가용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러시아에서 자금을 받은 국가와 정치인의 리스트에 이탈리아도 포함됐는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지만, 미국 정부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라 레푸블리카'는 전했다.
이 매체는 미국 정부가 내정 간섭 혐의를 피하고자 이 폭발성이 강한 정보를 미국인 소식통이나 미국 언론에 흘리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6년 12월에는 프랑스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가 러시아로부터 선거자금을 지원받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에도 정보 출처는 미국 정부였다. 러시아에 발목이 잡힌 르펜 대표는 2017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는 관심이 살비니 상원의원으로 옮겨졌다고 이탈리아 일간지 '라스탐파'는 지적했다.
살비니 상원의원은 "나는 러시아에서 루블(러시아 화폐)이나 유로, 어떤 것이든 받은 적이 결코 없다"고 말했다.
그가 속한 정당인 동맹은 "러시아 후원 의혹과 관련해 우리 정당이나 살비니 대표를 언급할 경우에는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chang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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