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식민지' 인도, 英여왕 장례식 대통령 참석에 냉소 여론 비등

입력 2022-09-15 12:13   수정 2022-09-16 18:32

'옛 식민지' 인도, 英여왕 장례식 대통령 참석에 냉소 여론 비등
"비용 다른 데 써야…영국 사과 원해"…왕관 다이아몬드 반환 요구도
정부도 식민지 흔적 지우기…뉴델리 거리 이름 바꾸고 조각상도 교체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 대통령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 참석을 놓고 인도 사회가 시끄럽다.
인도에서는 다른 서방 국가와 달리 엘리자베스 2세 추모 분위기가 크게 형성되지 않았는데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 발표가 나오자 냉소 여론이 커지는 분위기다.
인도 외교부는 14일(현지시간) "드라우파디 무르무 대통령이 오는 17∼19일 영국을 방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에 참석하고 인도 정부를 대표해 조의를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왕 장례식은 오는 19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되며 각국 정상과 고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인도는 의원내각제 정치 체제를 택한 나라라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다. 헌법상 국가 원수지만 실제로는 의전 등을 주로 수행한다.
무르무는 인도의 첫 부족민 출신 대통령으로 지난 7월 취임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과거 인디라 간디 인도 전 총리의 장례식에 영국 총리와 왕실 관계자가 참석한 점을 예로 들며 이번 결정을 환영한 이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르무 대통령의 영국행에 냉소를 보내며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
네티즌 카말레시 초우라시아는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필요하지 않다. 그 비용이 얼마인가"라며 인도인을 위한 다른 좋은 곳에 돈을 쓰면 안되냐고 반문했다.

일부는 무르무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영국 왕실 소유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05.6 캐럿의 코이누르는 영국 여왕의 왕관에 박힌 다이아몬드로 13세기 초 인도 남부에서 채굴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굴제국 등 여러 왕가의 소유로 내려오다 1849년 시크 왕국이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동인도회사를 통해 영국 왕실로 넘어갔다.
앞서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직후에도 인도인 상당수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과거 영국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산디프 간도트라는 영국 BBC뉴스에 "영국은 인도로부터 모든 것을 가져갔다"고 비난했다.
죠티 아트왈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 역사학과 교수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인도의 많은 이들은 여전히 여왕으로부터 (식민 지배 관련) 사과를 원했다"며 "그들은 영국의 인도 통치 관련 탄압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아트왈 교수는 "이제 인도인들은 찰스왕에게 사과를 기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도 정부도 영국 식민지 지배 흔적을 지우는 데 열심이다.
최근에는 인도 관공서가 밀집된 수도 뉴델리의 중심 거리의 이름을 '라지파트'(왕의 길)에서 '카르타비아파트'(의무의 길)로 바꿨다.
라지파트 인근 영국 국왕 조지 5세(1865∼1936)의 조각상이 있던 자리에는 최근 수바스 찬드라 보스(1897∼1945) 조각상이 들어섰다.
조지 5세 조각상은 인도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같은 자리를 지키다가 1968년 뉴델리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보스는 영국 식민지 치하에서 비폭력주의를 주장한 마하트마 간디 등과 달리 무력 투쟁을 통한 독립을 추진한 인물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불꽃 같은 인생사 등으로 주목받았으며 지도자라는 뜻의 '네타지'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뉴델리에 사는 기업가 디렌 싱은 AP통신에 오늘날 왕이나 여왕을 위한 자리가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oo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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