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뒤 역사] 찰스 3세는 영국사의 '찰스 징크스' 피해갈 수 있을까

입력 2022-09-17 07:30  

[뉴스 뒤 역사] 찰스 3세는 영국사의 '찰스 징크스' 피해갈 수 있을까
찰스 1세, 내전에서 패해 참수형…찰스 2세는 의회와 사사건건 마찰
'자칭 찰스 3세'는 스튜어트 왕가 복원하려다 실패

[※편집자 주 : '뉴스 뒤 역사'는 주요 국제뉴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건, 장소, 인물, 예술작품 등을 찾아 소개하는 부정기 연재물입니다.]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후 왕위 계승과 관련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왕명(regnal name)을 '찰스'로 정한 것이었다. 그의 정식 이름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이다. 마운트배튼-윈저라는 성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쓰일 일이 없다.
왕명으로는 국왕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대개는 일상적으로 불리는 첫 번째 이름을 왕명으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그의 아들인 에드워드 7세는 앨버트 에드워드라는 이름들 가운데 두 번째를 왕명으로 택했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는 앨버트 프레더릭 아서 조지라는 이름에서 조지 6세가 됐다.
찰스 3세의 경우 왕명으로 찰스를 꺼릴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2005년 영국 일간지 런던 타임스는 찰스 당시 왕세자의 '신뢰받는 친구들'의 말을 인용해 존경받는 군주였던 할아버지를 기리는 뜻에서 그가 왕명으로 '조지'를 선호한다고 보도했다. 이후에도 간간이 유사한 보도가 잇따랐다. 찰스라는 왕명이 기피될 것이라는 추측과 보도의 근거는 이 이름의 국왕들이 남긴 징크스다.



찰스 3세 이전 영국 역사에서 등장하는 국왕 찰스는 영국 내전(English Civil War)에서 패해 처형당한 찰스 1세(1600~1649)와 그의 아들 찰스 2세(1630~1685) 등 2명이고 찰스 2세의 동생 제임스 2세의 손자인 자칭 찰스 3세(1720~1788)도 있다. 이들은 모두 영국의 정치를 퇴보시키거나 극심한 혼란과 내전을 야기한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찰스 1세는 영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처형당한 군주이자 한동안이지만 군주제의 폐지를 불러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난 후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물려받게 되면서 그의 아들 찰스 1세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통합 군주가 될 수 있었다. 왕권신수설을 신봉한 찰스 1세는 1625년 왕위에 오른 후 전제적 통치를 추구했으나 잉글랜드 귀족과 의회는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에게 호락호락 복종하지 않았다. 찰스 1세에게는 의회를 억누를 만큼의 정치적 기반이나 군사적 역량이 미비했지만 본인은 이를 잘 몰랐던 듯하다.
1642년 그는 의회가 반역을 도모한다면서 무장 병력을 이끌고 의회로 쳐들어가 주모자 5명을 넘기라고 요구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그러나 찰스 1세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의회의 격분만 불러일으켰다. 의회는 군대를 일으켜 런던을 점령했고 찰스 1세는 지방으로 도피했다. 영국 내전의 시작이었다. 몇 년간 의회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찰스 1세는 1646년 옥스퍼드 공방전에서 크롬웰이 이끌던 의회군에 패배하자 하인으로 변장하고 도피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군대에 몸을 의탁했으나 이들은 돈을 받고 잉글랜드 의회군에 찰스의 신병을 넘겨 버렸다.
억류 중 의회군을 상대로 한 협상과 일시적인 탈출 후 스코틀랜드군을 앞세운 반격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뒤 찰스 1세는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됐다.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려던 의회 주도세력은 찰스 1세가 완강히 저항하자 결국은 그를 처형해야만 평화가 달성될 것이라는 판단을 굳히게 됐다. 찰스 1세는 1649년 의회에 의해 기소됐고 대역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이 내려진 지 나흘 만에 그는 공개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여분의 셔츠를 달라는 것이었다. 1월 한겨울 날씨에 추워서 떨게 되면 군중이 두려움에 떤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는 아버지가 처형된 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추대돼 잉글랜드의 왕위를 되찾으려 했으나 1651년 크롬웰의 군대에 패해 유럽으로 달아났다. 프랑스, 네덜란드 공화국과 스페인령 네덜란드 등을 망명객으로 떠돌던 그는 1658년 크롬웰의 사망 이후 왕정이 복고되자 1660년 왕위에 올랐다.
찰스 2세는 아버지처럼 불행한 종말을 맞지는 않았으나 그다지 역사에 이름을 새길만한 업적은 없었다. 그가 '명성'을 남긴 분야는 엽색 행각이었다. 망명 중이던 1648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루시 월터라는 웨일스 출신 여성을 만나 아들을 낳은 것을 시작으로 밝혀진 혼외자만 12명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1662년 결혼한 포르투갈 왕 주앙 4세의 딸 카타리나 왕비와의 사이엔 자식이 없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찰스 2세도 의회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가톨릭에 유화적이었던 그는 가톨릭교도의 권리를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하려다 반대하는 의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철회했다. 합법적인 자식이 없어 가톨릭으로 개종한 동생 제임스가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 확실시되자 의회 일각에서는 그의 왕위 계승을 원천봉쇄하는 '배척법'(Exclusion Bill)의 입법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초래된 정치적 위기는 국왕을 옹호하는 토리와 국왕의 뜻을 거역해 가톨릭교도의 왕위 계승권 배척을 밀어붙이려던 휘그로 정파가 나뉘는 계기가 됐다.



배척법 입법을 비롯한 의회의 못마땅한 움직임을 의회 해산, 사법부를 동원한 처벌 등 강압적 방법으로 억누른 찰스 2세는 아버지처럼 불행한 죽음을 맞지는 않았지만 영국의 정치 발전을 후퇴시켰다는 일반적인 평가를 받는다. 찰스 2세의 생전에 늘 골칫거리였던 후계자 문제와 이와 연관된 종교 문제는 그의 사후에 더욱 악화했다. 동생은 제임스 2세로 왕위에 올랐으나 가톨릭 왕에 반기를 든 의회에 타도돼 불과 3년 만에 왕좌에서 쫓겨났다. 이는 피를 흘리지 않은 혁명이라고 해서 '명예혁명'으로 불리지만 제임스 2세가 재빨리 물러난 건 대항해볼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
이 같은 명예혁명 이후 결국 왕권을 잃게 된 스튜어트 왕조 복고 운동 과정에서 '자칭 찰스 3'세가 등장한다. 쫓겨난 스튜어트 일족의 망명지 로마에서 태어난 제임스 2세의 손자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다. 일찌감치 아버지와 함께 스튜어트 왕조 복위에 나선 찰스 스튜어트는 1745년 스코틀랜드에서 현지 동조자들을 규합해 '재커바이트 반란'(Jacobite Rising)을 일으키지만 이듬해 스코틀랜드 컬로든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한 후 다시는 힘을 얻지 못했다. 그 후 이탈리아 도시들을 비롯한 유럽 각지를 전전하면서 술과 여색에 탐닉하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67세의 나이로 자연사했으니 개인적으로는 말로가 그리 비참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찰스 3세가 의회와 전쟁을 벌이다 처형된 찰스 1세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찰스 2세와 유사한 운명을 맞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찰스 2세는 죽을 때까지 왕위를 지켰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그의 통치는 결국 스튜어트 왕가 축출의 빌미가 됐다. 영국에서 군주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이 갈수록 퇴조하는 상황인 데다 선왕과 비교하면 찰스 3세 본인의 신망도 높지 않다. 찰스 3세는 또 한 명의 '불행한 찰스'가 되지 않으려면 각별히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cwhy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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