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중국이 한중일 고대 유물 전시회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 고대사 연표를 전시했다가 한국의 항의에 뒤늦게 연표를 철거했다.
중국이 한국사 연표를 철거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한 만큼 실제 철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6일 오전 베이징 톈안먼 광장 인근에 있는 국가박물관을 찾았다.
전날 인터넷으로 관람 예약을 했음에도 한국 기자라는 신분이 확인되자 박물관 측은 취재를 해서는 안 된다며 약 20여 분간 각종 주의사항을 공지하고 나서야 입장을 허락했다.
한국사 연표 문제로 민감해진 상황을 반영하듯 보안요원은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논란이 된 '동방길금(동방의 상서로운 금속) -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은 지난 7월부터 박물관 2층에서 진행되고 있다.
약 66㎡ 규모의 한국관에는 며칠 전과 다름없이 불상, 검, 거울 등 한국의 청동 유물 10여점이 전시돼 있었고, 전시물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다만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 고대사 연표가 걸려 있던 붉은 벽은 빈 곳으로 남아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하얀 조명과 조명 아래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보안요원만이 이 자리가 연표가 걸려있던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또 중국관이나 일본관과 달리 한국관에만 보안요원 4∼5명을 배치해 관람객의 동향을 주시하도록 한 점도 눈에 거슬렸다.
보안요원에게 다가가 한국사 연표를 언제 철거한 거냐고 물었으나 그는 "나는 모른다. 취재를 하면 퇴장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한국관 관람을 마친 뒤 인근 중국관과 일본관을 둘러보면서 중국과 일본 고대사 연표도 함께 철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사 연표만 철거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한국 고대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한 일은 한국 정부가 외교 경로로 항의할 정도로 엄중한 사건이지만, 정작 중국인들은 당국의 보도 통제로 모르고 있었다.
전시관을 나서면서 여러 명의 중국인에게 한국사 연표 철거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중국이 한국사 연표에 고구려와 발해를 추가해야 한다는 우리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연표를 철거한 점 등을 고려하면 언제든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중국이 한국사 연표를 수정하지 않고 철거했다는 점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며 "정부는 물론 교민들도 중국의 역사 왜곡을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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