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0여개 도시서 시위…당국 "반정부 세력이 폭력 행위 주도" 주장
주요 도시 인터넷 '차단'…이란 대통령, 서방 우려에 '이중잣대' 반발
(서울·테헤란=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이승민 특파원 = 이란에서 한 20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됐다가 의문사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2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과 외신을 종합하면 마흐사 아미니(22) 사망 사건으로 지난 17일 시위가 시작된 후 이날까지 총 10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BBC 방송은 이란 치안당국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한 16세 소년이 총격으로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州)에서 촉발된 시위는 현재 수도 테헤란과 시라즈, 케르만샤, 하마단, 타브리즈 등을 포함한 50여 개 도시로 확산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한 동영상에는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검은색 히잡을 벗어 불태우는 모습이 담겼다.
또 테헤란 집회에서는 "머리에 쓰는 스카프도 반대, 터번도 반대, 자유와 평등은 찬성"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는 등 현장 분위기가 갈수록 격화하는 모습이다.
쿠르드 인권 단체(Hengaw)는 최근 이어진 시위로 10명이 사망하고 450여 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이날 이란 당국이 집계한 사망 시위대 수는 7명이다.
국영 IRNA 통신은 폭력성이 강한 시위대가 도시 기반 시설과 차량을 부수고, 경찰서를 포함한 도심 건물에 불을 질렀다고 보도했다.
또 시위대가 쏜 총에 맞아 숨진 보안군(바시즈 민병대)과 경찰이 4명이라고 전했다.
보안당국은 전날까지 시위대 1천명이 체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체포 인원은 이날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안 당국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지 않았으며, 반정부 세력에 의해 일부 시위대가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국은 시위 지역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인터넷 통제 감시 사이트 넷블록스는 현재 이란은 2019년 11월 이후 가장 광범위한 인터넷 접속 제한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이란에서 휘발유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당국은 열흘간 인터넷을 완전히 차단했었다.
당시 외신들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1천500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란 정보당국은 전날부터 인스타그램 접속을 차단하고, 일부 지역에서 왓츠앱을 통한 사진 전송을 제한하기도 했다.
22일 수도 테헤란에서도 간헐적인 인터넷 차단이 이뤄지고 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은 "저녁 시간대 외출을 삼가고, 시위대를 구경하거나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달라"면서 교민에게 안전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은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이란의 용감한 여성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슬람 성직자 출신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서방이 미국의 아동 학대, 캐나다 원주민 착취,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인권에 대한 이중잣대를 배격한다"고 말했다.
아미니는 지난 16일 테헤란의 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폭력을 쓴 적이 없다며 심장마비가 사인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지만, 유족은 아미니가 평소 심장질환을 앓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단속하는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는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조사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슬람권에서 외국인을 포함해 외출 시 여성이 무조건 히잡을 쓰는 곳은 이란이 유일하다.
dk@yna.co.kr
logo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