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내각제 상징적 국가원수 불구 법률안 서명 거부
"중대한 헌법 위반…사임해야" 비판 나와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정치 혼란이 끊이지 않는 네팔이 이번에는 '대통령 위헌 논란'으로 시끄럽다.
22일(현지시간) 히말라얀타임스 등 네팔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비디아 데비 반다리 네팔 대통령은 최근 시민권법 개정안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다.
총리가 실권을 가진 의원내각제 국가 네팔에서 상징적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이미 의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서명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법률 전문가들은 의회 다수가 법률안을 가결할 경우 대통령은 이를 승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라람 K.C. 전 대법관은 의전상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법률안 서명을 거부한 것은 심각하고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며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누군가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도 "대통령의 비헌법적 조치는 선출된 의회를 심각하게 모욕하고 낮춰봤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된 법안은 부모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시민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르면 네팔 어머니를 뒀지만,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 법률안이 통과되면 약 50만명이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야당 등 일각에서는 새 법률안에 외국인 여성의 시민권 획득 자격 수정안도 포함돼야한다고 주장한다.
야권 지도자인 수리아 타파는 로이터통신에 "외국인 여성의 경우 시민권을 얻으려면 7년을 기다려야한다는 단서가 개정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민감하고 중요한 이슈는 의회 다수가 아닌 모든 정당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보좌관인 베시 라지 아디카리는 "정부와 의회가 대통령의 우려를 다루지 않았기에 대통령이 해당 법률안 승인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아디카리는 다만, 구체적인 대통령의 우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5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네팔 대통령에 당선된 반다리는 2018년 연임에 성공했다.
첫 당선 때에는 새 헌법 시행에 따라 전임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소화했고, 연임 후에는 5년 임기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반다리 대통령은 적극적인 여권운동가로 헌법에 여권 보장 규정을 담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 군주국이었던 네팔은 1990년 입헌군주제와 다당제를 도입했고, 2008년에는 왕정을 폐지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치 세력이 끊임없이 이합집산하며 정국 불안이 이어졌다.
총리의 경우 1990년 이후 30번 가까이 바뀌었고 왕정 폐지 이후에도 10여차례나 정부가 교체됐다.
현 총리인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도 정치 혼란 끝에 작년 7월 취임했다.
당시 총리였던 K.P. 샤르마 올리 총리는 불신임 상황에 몰리자 두 차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시도했다가 매번 대법원에 의해 제지됐다.
이후 대법원이 의회 복원과 총리 교체까지 명령하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정치 혼란 때 반다리 대통령은 올리 전 총리의 편을 들기도 했다.
한편, 네팔은 정국 불안 속에 경제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진 스리랑카와 마찬가지로 관광 산업과 해외 노동자의 자국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데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전쟁 등으로 외화 확보가 힘들어지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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